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산후비만, 예방과 관리

ccl by davhor

국의 여성 비만 가운데 60%는 원인이 산후비만이라고 한다.
산모들은 임신중 운동량이 지나치게 적지만 영양 섭취는 넘치는데다, 출산 후에는 산후 조리를 하기 위해 많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임신중 늘어났던 배와 증가된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한 후 다시 이전 체중으로 감소하지 않고 유지되는 경우를 산후비만이라 말한다.
산후비만 치료는 어려운 점이 많아.
치료 방법에 있어서는 다른 비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까 복부비만에 대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래.
정작 문제는 온 신경이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다 쏠려 있어서 자기 몸에는 소홀해 져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산후비만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약간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리 힘들지 않게 예방할 수 있다.

신과 관련된 의학적인 자료들을 찾아보면, 출산 후에는 임신 전에 비해 1 kg 이하의 체중 증가가 있는 것이 평균값이라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임산부에서 출산 후에 체중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체중이 잘 증가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야.
이런 산후비만의 위험인자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겠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임신 중 체중 증가’와 ‘임신 전의 체질량지수(BMI)’란다.
즉, 임신 기간 동안 체중이 많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임신 전에 비만이 있을수록 산후비만이 잘 생기게 된다는 거지.
그 외 의견의 차이는 있지만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경우, 여러 번 출산한 경우, 임신 간격이 짧은 경우 그리고 출산 후 활동량이 적은 경우에 산후비만의 위험이 높단다.

저 임신 기간 중에 어떻게 해야 비만을 예방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볼께.
일단 체중이 적정 수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임신 기간 동안 체중 증가가 10~12 kg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시길.
특히, 임신 전에 BMI 지수 25 이상이었던 비만한 산모이면 6 kg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해.
그렇다고 임신 중에 체중 조절을 심하게 하면 태아의 성장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의도적으로 체중을 조절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태아의 성장 상태를 같이 관찰해 주셔야만 한다.
입덧으로 음식을 제대로 못먹다가 입덧 시기가 지나 식욕이 회복되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
바로 이 시기에 체중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얘기.
체중이 적절히 증가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체중증가가 너무 빠르면 식사량을 조절하시길.

신중의 편식과 폭식은 출산 후에도 영원히 나쁜 식습관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셔야 해.
임신 6개월까지는 하루에 150 kcal(밥 반공기 정도)의 열량이 더 필요하고 임신 7개월 이후에는 태아가 빨리 자라므로 하루에 350 kcal(밥1공기보다 약간 많은 상태)의 열량이 더 필요하다.
임신중의 식사는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되, 하루 3회 균등하게 나누어 먹는 것이 좋아.
임신 중반기인 4~7개월 동안에는 단백질과 칼슘이 중요하니까 충분히 드시고, 체중 증가는 5 kg 정도가 적절하다.
임신 9개월이 되면 한 달에 1kg이상 체중이 늘지 않도록 유지하시면 된다.

ccl by sean dreilinger

산 후에도 적절한 관리를 해줘야 비만을 예방할 수 있지.
출산 후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시기인 산욕기(출산 후 6 주까지)가 지나면 체중은 점차 줄기 시작해 3~6개월이 지나면 임신 전의 체중으로 회복된다.
모유 수유를 하는 경우에는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일반적으로 수유 중에는 체중 감량을 하지 않지만 산욕기가 지나도 체중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1 주일에 0.5 kg 정도의 속도로 체중을 감량한다.
모유 수유 중이라도 이 정도로 감량을 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수유에 지장이 없다.
많이 먹고 꼼짝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산후조리는 피하시기 바래.
출산 후 흔히 몸을 도우기 위해 먹는 음식들은 열량이 엄청나거든.
활동량이 줄어든 상태에서 많이 먹게 되면 체중은 증가하기 마련이니까 균형잡신 식사를 하면서 배부르지 않게 드시기 바란다.

후에 갑자기 활동을 증가시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단계적으로 늘리면 비만을 예방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일단 산후 1~2주까지는 방안에서 가벼운 활동만 하시길.
3 주가 지나면 조금씩 가벼운 요리나 집안 활동, 체조 등으로 일상 활동량을 늘려 나간다.
4-5 주에는 무리하지 않게 평소 활동을 시작하시고, 이 때부터는 심한 일이나 운동을 제외하면 평상시 활동은 무방하다.
6 주째가 되면 가벼운 운동을 시작하시고 아주 서서히 강도를 높여나가시길.
너무 오래 동안 체중 증가가 유지되면 체중 감량이 힘들어 지거든.
6주가 지났는데도 체중이 줄지 않거나 계속 붓는 상태가 지속되면 전문의를 찾아가서 혹시 다른 이상은 없는지 진찰을 받으보시는 것이 좋아.
출산 후에 갑상선기능이 떨어지면 피로를 쉽게 느끼고, 체중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흔히 말하는 '산후풍'이니까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의사를 찾아가시길.

만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예방이야.
일단 체중이 증가하면 체중을 감량하더라도 이전에 비만한 적이 없는 사람에 비해 체중 유지가 더 어렵다.
그리고 체중이 증가된 경우에는 가능하면 빨리 이전 체중으로 감량하는 것이 좋다.
증가된 체중이 오래 유지될수록 체중을 줄이기는 점점 더 힘들어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따라서 산후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신 기간 중 과도한 체중 증가를 방지하고 출산 후 적절한 관리를 통해 이전 체중으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산후비만의 위험이 높은 비만 여성들은 임신 계획을 세우면서 미리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좋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부분비만'에 관한 글들입니다.

▷ 부분비만, 제대로 알기
▷ 하체비만
▷ 팔뚝살빼기
▷ 복부비만
▷ 셀룰라이트 다루기
▷ 산후비만, 예방과 관리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Pretty woman, 1990

보화, 국제화, 세계화의 시기였던 1990년대에는 20세기의 모든 스타일이 시도되었다.
패션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특별히 어떤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개인이 자기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는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패션의 무게 중심이 디자이너로부터 개인에게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더 이상 패션에 있어서 고정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고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말적인 경향과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스타일에 대한 향수와 복고, 재창조의 경향도 이어져갔다.
90년대 초반에는 60, 70년대풍의 로맨틱 모던 스타일로 여성미를 강조했으며, 복고풍의 유행으로 오드리 헵번과 재클린 스타일이 재등장했다.
비틀스룩에는 1940년대 허리와 가슴을 강조한 글래머룩이 가미되어 산뜻하고 현대적인 섹시룩으로 재창조 되었다.
레이어드 룩은 계속 인기를 이어갔는데 힙합 패션에 응용되어, 80년대식의 레이어드가 아닌 긴팔 위에 반팔 티셔츠를 입는 등 새로운 레이어드 코디네이션이 나타났다.
브랜드 마케팅 전략의 성공으로 샤넬, 디오르, 아르마니, 프라다, 루이비통, 페라가모 같은 명품 스타일이 고급 패션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행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1940년대 글래머룩이 유행했다.
힙합 뮤직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10대를 위주로 흑인풍의 힙합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심플하고 절제된 세련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뉴욕 스타일이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나 밀라노 스타일보다도 더욱 유행했다.
힙합 또는 뉴욕 스타일과 같은 미국발 패션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것은 헐리우드 영화와 미국의 TV 시리즈물, 뮤직비디오가 세계의 극장과 안방을 점령한 데 크게 힘입은 결과였다.
지나친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발로 1998년부터 아방가르드가 대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0년대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스타일보다는 세계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패션의 등장은 국가와 문화에 구속받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 모든 개인들에게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무수한 패션 정보 가운데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로 넘어오면서도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른바 '룩'의 시대는 1970년대 말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고, 1980년대부터는 뚜렷하지 않은 시대로 전환되었다.
세분화와 차별화를 거치면서 개인의 패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아졌고, 의복은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표현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패션 업체의 주요 타겟도 젊은 층을 떠나 연령층이 다소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으로 이동했다.
고유의 상표를 강조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부터의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적 경향은 1980년대 패션의 흐름을 지배했다.

1980년대에는 이란ㆍ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파동으로 세계경제 침체가 계속되었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가치관은 개인의 생활에서 제품의 질적인 추구와 다양화, 개성화를 요구햇다.
반면에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생활영역 확대는 생활수준과 소득의 향상을 가져왔고 건강과 여가를 점점 더 중시하게 되었다.
스포츠 웨어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빅 룩(big look)이 유행하였으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녀 구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크고 헐렁한 스타일의 무채색이었기 때문에 길이는 반코트 또는 롱코트만큼 길어져 엉덩이 부분을 가렸으며 남자 셔츠를 길 게 늘린 듯한 느낌이 드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는 아주 잘 차려 입은 커리어 우먼의 '테일러드룩'으로 1980년대 유행의 창조자가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표현해 주는 의상에 대해 관심과 수요의 증가는 디자이너 상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으며, 베르사체의 메두사 로고, 샤넬의 골드체인백, 모피코트로 대표되는 '리치룩'이 등장했다.
특히, 스포츠 웨어가 필수품으로 등장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운동복과 상표 인지도가 높은 운동화의 인기가 높았다.

주얼 웨어에서 시작된 유니섹스 모드는 여성의 사호활동이 증가하면서 때와 장소의 부별없이 착용하게 된 바지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었다.
젊은이들이 캐주얼하게 입는 옷으로, 혹은 작업복으로 입던 청바지가 1980년대 중반에는 샌드워시(sand wash)된 스노우 진(snow jean)의 유행을 가져왔다.

자, 의복, 스타킹, 구두, 액세서리 등으로 복식전체를 구성하여 코디네이트시킨 토탈 룩(Total Look)이 등장했는데, 토탈룩은 착용자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토탈룩의 등장은 디자이너가 조화시켜 제시한 의상을 선택하던 예전과는 달리 착용자 자신이 직접 새로운 의상을 창조하고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된 안목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layered look

성복은 스포츠웨어의 발달로 캐주얼한 정장 스타일이 착용되었다. 또한 1980년대에 등장한 여피(Yuppie)는 유명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비싼 차를 운전했다. 여피 남성들은 주로 넓은 어깨와 이탈리아풍의 긴 재킷,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바지에 생가죽 구두나 끈 달린 단화를 신고 멋진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착용했다.

을 여러 벌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제시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바지 위에 덧입는 튜닉 원피스나 또는 긴셔츠 위에 조끼와 재킷, 코트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옷길이의 다양화로 멋을 연출한다.
1980년 초에는 캐주얼 웨어를 중심으로 레이어드 룩이 바지와 셔츠, 조끼, 재킷, 코트 사이에서 남성적이고, 세련된 도시풍의 패션으로 유행했다.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의복으로서 여러방법으로 겹쳐 입는 코오디네이션 패션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콘은 마돈나와 다이애나 비였다.
마돈나는 10대 뿐만아니라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란제리 룩, 브래지어 룩 등 자유롭고 섹시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다이애나 비와 찰스 황태자와의 결혼은 낭만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이 절정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입고 걸치는 모든 것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모자를 좋아한 그녀 덕분에 모자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보석 산업 또한 그녀의 보석 수집에 영행을 받아 호황을 누렸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션에서 개인의 개성이 정말로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20~1960년대의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는 복고적인 경향과 더불어 60년대의 스타일이 계속 유행하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을 보인 디자이너도 많아졌고, 등장한 스타일도 많았다.
70년대는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달러 쇼크, 그리고 인플레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불황기로 사회적인 불안 심리가 많이 작용하던 시기였다.
특히 오일쇼크를 계기로 좀더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에서 의상을 선택하게 되었고 다목적 패션이 중시되었다.

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은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을 유행시켰다.
레이어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스타일로 저렴한 옷들을 층층이 겹쳐 입어 색상이나 소재 등에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레이어드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 복고풍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 주류를 이룬 것은 70년대 전반부였으며, 전체적으로 헐렁한 이국풍의 빅 룩, 오버사이즈 룩도 유행하였다.
 


70년대의 가장 흥미로운 스타일은 바로 펑크 패션이다.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펑크패션은 면도날이나 침 같은 날카로운 디테일, 쇠사슬과 금속 징의 팔찌, 장갑, 벨트. 낡은 군화 등의 소품, 모히칸 헤어스타일, 검은 화장이 특징이었다.
하의에는 주로 뒤가 쳐진 검은 색의 판탈롱을 입었다.
이런 것들을 하이패션으로 흡수한 디자이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이었다.
펑크 패션은 아방가르드한 현대의상 아이디어의 근원적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니섹스 현상을 거치면서 남자 복식에서도 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캐주얼화가 가속되었다.
남자들이 드디어 정장 사무복을 벗고 다양한 레저 웨어와 스포츠 웨어를 즐겨 입게 된 것이다.
넥타이 대신 스카프와 크라바트를 착용하기도 했고, 남성핸드백(manbag)도 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후드가 달린 조깅복이 매우 유행했다.

국에서는 기존의 양장점 형태에서 부띠끄로 바뀌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외국의 패션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져 히피룩과 청바지는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토요일밤의 열기》가 일으킨 디스코 붐은 1970년대 말 한국에서도 젊은층의 인기를 끌었다.
디스코 문화는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지면서 펑크 패션, 디스코 뮤직, 디스크 자키가 유행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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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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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압과 금기로부터의 해방과 혁신은 60년대의 특징이었고 패션의 변화 속도도 사회의 발전속도만큼 빨라졌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요구를 젊은 디자이너가 패션에 반영했고, 광고와 대중 매체의 표어도 '젊음'이었고, 미국의 대통령도 젊었다.
비틀즈는 대중음악을 혁신했고 앤디워홀은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다.

1960년대의 가장 충격적인 패션의 이슈는 바로 1965년의 미니스커트의 등장이었다.
미니는 60년대 초 디자이너인 자크 델라에이(Jacques Delahays)에 의해 첫선을 보였으나, 65년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와 조안 위르(Joan Huir)에 의해 애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미니스커트는 당시 모델이었던 트위기(Twiggy)의 가냘픈 몸매와 천진난만한 모습의 단발머리(bob hair)와 어울리며 새로운 패션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
1966년을 통해 스커트는 점점 더 짧아졌고, 스커트 총길이가 18인치밖에 안되는 가장 짧은 미니스커트가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었다.

편 미니스커트의 유행과 더불어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인 루디 건릭(Rudi Gernreich)은 1964년 패션계의 화제를 일으킨 탑리스(topless) 수영복을 선보였다.
1964년부터는 비닐, 인조가죽, 금속, 유리 같은 신소재도 패션의 소재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살갗이 비치는 시스루 드레스(See through dress)가 유행했다.

아트(op art)와 스페이스 룩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더불어 블랙 & 화이트, 화이트 & 실버의 미래주의 패션을 가져왔다.
미국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1966년에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은색 가죽과 쇠사슬 갑옷, 다양한 색깔로 물들인 가발, 플라스틱 등의 각종 인공 소재를 이용해 패션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68년에 이에 대한 반발로 로맨틱 룩(Romantic look)이 선보였다.
1967년에는 남녀의 구별이 모호한 유니섹스 패션이 입생로랑에 의해 정착되었다.
로빈 훗 가죽 재킷과 극서부 지방의 가죽 카우보이 바지, 터틀넥 풀오버는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의류가 되었다.
입생로랑은 남성 수트와 유사한 팬츠 수트를 발표하였는데, 속에 브라우스와 조끼를 입고 타이를 맨 모습을 볼 때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의 가장 큰 문화적 현상은 히피의 등장이었다.
미국의 지나친 물질 만능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반발한 반전사상을 내세운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이들이 입고 다니는 히피 룩(Hippie look)을 보면 낡고 해진 청바지 위에 수술이나 징과 같은 장식을 달고, 낡은 부분을 가리기 위해 패치워크나 자수 장식을 하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은 남녀 모두 긴 생머리나 웨이브진 긴머리를 늘어뜨렸고, 머리에 스카프를 매기도 했다.

시대에 와서야 한국의 패션 흐름에 대해 할 얘기가 생긴다.
4.19와 5.16을 거치는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명동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양장점에서는 외국의 유행이 천천히 소개되면서 세계 패션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신우의 오리지날리, 진태옥의 디쉐미는 대표적인 양장점들이었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차림의 귀국장면이 TV에 방영된 것은 대단한 이슈였고, 한국 여자들의 패션을 변화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션은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냉전의 시대를 맞은 세계에서 미국은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선두주자였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딘의 이미지가 세계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은 모두 미국인이었다.
제왕 디오르는 시즌마다 새로운 '라인'들을 발표해 패션 발전속도에 엄청난 가속도를 더했다.
19세기에는 모든 유럽인들의 머리를 맞대고 미적 감각을 끌어모아 수십년에 걸쳐 이룩하던 변화를 디오르는 혼자서 6개월마다 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패션발전에 어느 정도의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있다.
1951년에 Levi's사의 등장은 여자들의 바지착용을 더욱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튤립, 큐폴라, I, 트라페즈, A, H, 색, 배럴 라인



오르는 계속하여 1953년 춘하 컬렉션에 튤립(tulip)라인을 발표했는데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를 짧게 해 발랄함을 추구했다.
어깨는 둥그스름하고 가슴선을 크게 강조한 반면 웨이스트부터 아래는 가는 디자인이었다.
1953년 가을에 발표한 에펠탑 라인은 하이웨이스트에 포인트를 둔 이브닝드레스로 프린세스 라인이 아랫단으로 내려가면서 넓게 퍼지는 형태로 허리선에 절개선을 넣거나 허리선 아래에 주머니를 달아서 H자의 가로선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슷한 시기에 샤넬은 파리의 오뜨 꾸뛰르에 돌아와서 발표한 샤넬 수트의 인기는 시대를 관통한 클래식이 된다.
샤넬 수트는 저지나 트위드를 쓴 직선적인 실루엣에 칼라를 달지 않은 심플한 목둘레와 재킷 밑단을 브레이드로 라인 장식을 하고 속에 입는 블라우스와 재킷의 안감을 매치시켜 큰 반응을 일으켰다.
1954년 봄에 자크 파트는 에스라인을 발표했다.
뒤 중앙에 여유를 주어 웨이스트를 조이고 스커트는 체형을 따르게 한 실루엣으로 옆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형이 S자와 비슷했다.

1955년 봄에 디오르는 A라인을 발표했다.
작은 모자, 좁은 어깨, 약간 하이 웨이스트에 편평한 가슴, 주름스커트가 아래로 퍼져서 A자형 실루엣이 되는데 이러한 실루엣은 슈트, 원피스, 코트 등에 적용시킬 수 있었으므로 H라인보다 인기가 있었다.
같은해 가을에는 Y라인을 발표하였는데, 스커트의 폭이 좁아졌고 어깨부터 가슴까지 흐르는 듯한 실루엣으로 앞중심선과 칼라의 윤곽선에서 Y라인을 형성하는 스타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씬하나 때로는 수직형으로 옷을 강조할 때도 있다.
같은 해에 합성섬유가 등장하였다.
1956년 가을에 발표된 마그넷 라인은 U자형의 자석처럼 모자에서부터 어깨, 허리로 흘러내리는 선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는 실루엣으로 애로 라인이라고도 하였다.
1957년 가을 디오르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스핀들 라인은 방추형으로 옷 중앙을 부풀려 과장시키고 위아래는 좁게 한 모양이 특징이다.
1958년 봄에 디오르사의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트라페즈 라인(trapeze line)을 발표했다.
트라페즈는 프랑스어로 사다리꼴이라는 뜻으로 어깨에서 스커트까지의 벌어짐이 사다리꼴과 같은 형태의 실루엣이었다.
이것은 색(sack) 드레스의 일종으로 스커트는 여유가 있는 형태였다.
색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라인 시대는 끝났다.

American Graffiti, 1973

큰롤은 1950년대부터 전세계를 휩쓸면서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패션용어로는 1950년대 룩과 같이 통용되고 있는데 특히 50년대 미국의 영 패션을 지칭한다.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스타일로 포니테일(Pony Tail)의 헤어, 알로하 프린트의 스포츠 셔츠, 플레어 스커트, 삭스에 스트랩 펌프스를 조합한다.

국 동부 8개 명문 대학 건물이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있어 아이비 컬리지(Ivy College)라고 불리는데, 아이비 룩이란 아이비 컬리지 학생들이 입던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일컫는 말이다.
교복 스타일에 많이 이용, 변형된 의미로 대학생들의 옷차림을 통틀어 아이비 룩이라고 한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션의 암흑기는 1차 대전에 비해 더 참혹하고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직물은 부족하고 국가적인 배급제와 법적인 디자인 제한조치 등으로 인해 의복은 고쳐입고 재생해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옷의 디자인은 축소되고 단순화되었다.
전쟁터에서 사라진 셀 수 없이 많은 남자 희생자들을 대신한 여자들의 사회참여도 폭발적으로 늘었고, 여성복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능성이었다.
전쟁 중에는 기능복 형태의 밀리터리 룩이 유행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모자, 굽이 있는 구두, 각진 어깨, 무릎 길이의 짧은 스커트에 재킷과 코트에는 군복 형태의 디테일이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디자인은 있었다.
차분한 색채를 사용했고 값비싼 트리밍은 제외되었다.
여자들이 바지를 주로 입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드레스는 허리를 더욱 가늘게 조인 볼드룩이 등장했다.

쟁 기간동안 패션 디자이너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고 항구도시 뉴욕에 부띠끄를 열었다.
폭탄이 떨어지지 않던 미국은 전쟁기간 동안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패션 모델로 등장시키면서 신흥 디자이너들이 그 시대의 독창적인 패션 제공자로 인식되면서 아메리칸 룩(american look)을 창조했다.

계대전이 끝나자 여성복에는 급격한 실루엣의 변화와 혁신적인 유행이 나타났다.
1차대전 후에 샤넬이 있었다면 2차대전 후에는 디오르가 있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여성스러운 우아함를 강조한 뉴 룩(new look)을 소개하면서 패션계의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파리가 세계 패션의 메카임을 다시 증명했다.
드롭숄더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로 표현된 부르조아적인 스타일은 유니폼에 싫증난 여자들에게 기쁨과 흥분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뉴 룩은 또한 짧게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을 출현시켰고 넓은 테의 모자 또는 아예 테두리가 없는 우아한 모자들을 쓰게 되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공황이 세계를 덥친 1929년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실업,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산은 낙천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여성 의복은 대공황을 계기로 직장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비활동적이고 우아한 여성적인 것이 중시되었다.
허리라인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스커트가 길어지면서 슬림해졌고,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이 되었다.
부드러운 니트와 레이스, 그리고 리본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인체를 부드럽게 드러내 보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출현하게 된다.
30년대 초에는 등을 드러내고 앞가슴을 가리는 홀터(halter) 네크라인의 이브닝드레스가 선보였는데 U자형이나 V자형으로 허리선까지 등이 노출되고 스커트는 플레어지게 한 디자인이었다.
어깨를 각지게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홀쭉하고 긴 롱 앤드 슬림(long and slin)의 여성적인 실루엣이 나타나면서 고어 스커트도 다시 유행했다.

킷과 코트는 날씬하게 신체에 맞았다.
코트는 발목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맥시라인이었고, 견장, 커다란 포켓, 커다란 라벨과 같이 군복에서 차용된 디테일이 특징을 이루었다.
물자 부족과 의복에 대한 각국의 법적 제재로 인해 30년대 말부터는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 슈트인 밀리터리룩이 실용적인 기능복으로 인정받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남성적인 테일러 수트도 여성복으로 정착되었다.
스커트는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가 무릎까지 짧아졌고 매우 두꺼운 어깨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를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39년 쯤에는 실용성 덕분에 스웨터도 널리 보급되었다.

국에서는 라텍스와 슬라이드 패스너(slide fastener, zipper)가 발명되었다.
지퍼는 훅(hook & eye)이나 단추 대신 여밈에 사용하게 되었다.
신축성 좋은 라텍스 천과 지퍼를 이용하여 가장 편안한 실크 코르셋이 제작되었고, 여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체형에 맞는 편안한 실크 코르셋을 입게 되었다.

동적인 스포츠의 인기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복이 디자인되기 시작하였으며, 1936년부터 휴가가 제정되어 신축성있는 직물로 만들어진 원피스 수영복이 착용되기 시작했고 30년대 중반 동안 투피스 수영복이 만들어지기 기작했다.  
테니스와 스케이트복은 과거보다 더 짧아졌고 플리츠나 플레어를 넣었다. 골프용 스커트는 특별히 깊은 플리츠를 넣었고 많은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자들은 턱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에 작은 장식용 모자나 머리에 꼭 맞는 캡을 썼다.
구두의 모양도 다양해지기 시작해서 하이힐, 웨지힐, 두꺼운 밑창이 출현했지만, 바쁜 일상생활에 적합하고 실용적인 낮은 굽의 스타일이 인기였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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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였고 패션 산업의 전성기였다.
시대 전반에 걸쳐 페미닌 스타일과 모던 스타일이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문화적 영향으로 세계의 모든 다운타운에서는 영화, 재즈음악, 자동차가 넘쳐 흘렀다.
사람들은 영화 속 스타들에게 열광하고 그 스타일을 연구하고 모방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가사 노동을 단축하는 도구들과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여자들은 집을 떠나 사회에 참여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고,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Marie Stopes가 피임법을 전파하면서 여성해방의 물결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Flapper girls

자들의 패션은 직선형 실루엣의 기능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로 표현되었고 당시의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와 모더니즘이 복식에 반영되었다.
직선의 짧은 머리, 어깨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납작한 가슴의 짧은 드레스, 힙까지 낮아진 웨이스트를 특징으로하고 여성의 신체 곡선은 무시하는 실루엣의 보이시 스타일(boyish style)이 나타났다.
1926년에는 기본적인 실루엣을 그대로이면서 여성적인 분위기를 더한 갸르손느 스타일(garconne style)이 등장했다.
이런 당시의 톱 모드를 입는 여성들을 플래퍼(flapper, 말괄량이)라고 불렀다.
플래퍼들은 복식과 행동에서 관습을  깨뜰기고 유행에 관심을 기울여 빨간 립스틱, 보브헤어, 슬리브리스 드레스를 즐겼다.

in 1926

복의 실용성과 활동성도 중요시되면서 옷의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스커트가 짧아진 것은 패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였다.
16세기부터 이어온 가슴, 어깨, 허리에 대한 관심이 다리로 옮겨지면서 스타킹, 벨트, 구두에 더욱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이다.
전통적인 검정 스타킹 대신 장식적인 요소가 더해진 베이지, 갈색, 다양한 색깔의 실크스타킹이 유행했고, 신발은 우아한 펌프스에서 높은 굽의 스트랩 슈즈, 편안한 플랫 슈즈에 이르기까지 앞코가 무척 뾰족했다.
모자는 눈썹을 가리도록 푹 눌러쓴 끌로셰 모자(cloche hat)가 유행했다
스커트의 길이는 1927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땅바닥에서 30~40cm가 되도록 짧아졌다가 이후로 다시 길어졌다.

시대에 유행하던 블라우스와 스커트의 콤비네이션은 없어지고, 힙에 약간의 여유를 준 데이타임 드레스(daytime dress)의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여성의 자유를 반영하고 새 시대의 기계적인 형을 선호하는 표시라고 할 수 있으며, 주로 라운드나 스퀘어 네크 라인인 드레스의 위나 허리부분은 기모노 패션을 잘라 드레스로 만든 모양이었고, 바디 부분은 스트레이트로 떨어지는 모양이었으나 접혀져서 주름이 지기도 했다.
허리선의 경우는 1925년 가장 많이 내려갔다.
이브닝 드레스는 단순한 실루엣이었지만 장식적인 레이스, 쉬폰, 실크로 꾸며졌고 인조보석으로 한층 더 화려한 표면장식을 했다.



성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상류사회 여성들이 긴 털목도리와 양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파고 들었다.
자신이 즐겨 입던 미디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스트레이트 스커트로 구성된 실용적인 옷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20년에는 유명한 샤넬룩을 완성시킨다.

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여자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당시의 레저와 스포츠는 부유함을 상징했다.
스포츠에서도 종목별 목적에 맞는 기능성 의복이 세분화되어서 등장하고, 마침내는 스포츠룩을 발전시켰다.
1920년대 초 가브리엘 샤넬이 여행지에서 그을린 피부로 돌아온 모습이 공개된 이후로는 선탠을 한 그일린 피부가 유행했고, 패션모델과 마네킹의 피부도 구리빛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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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기모노 드레스와 호블스커트

자이너 폴 포와레(Paul Poiret)는 그의 전성기인 1910년부터 1914년까지 패션계를 지배했다.
이시기는 유럽 여러 나라들과 중국, 일본과의 교역,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 등으로 유럽의 여자 복식에 동양적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포와레는 패션에 동양적인 강한 원색과 과잉장식, 이국적 패턴과 벨벳과 같은 낯선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했다.
'코르셋에서 해방된 대신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는 말처럼 발목으로 갈수록 스커트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호블스커트도 그의 디자인이었다.

선적이고 추상적인 아르누보로부터 기계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패션은 새로운 문화운동인 아르데코(Art-Deco)의 영향권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패션에서 큰 변화는 1900년대 초반 상류층에 널리 퍼져 있었던 S-실루엣이 사라지고 허리 라인이 점점 내려와 로우 웨이스트(low waist)의 직선형 실루엣이 유행한 것이었다.
여성스러움보다는 단순함을 강조한 자유롭고 개성적인 디자인은 현대복의 성격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상의가 남자 상의와 거의 같은 형으로 변해 더블 칼라의 재킷과 롱 스커트의 테일러드 수트가 유행했다.
하지만, 모자와 머리장식에서는 복식과 반대로 여전히 풍성한 장식과 화려하고 커다란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1914년 7월 28일 이후로 패션계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복은 본격적인 현대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치마길이는 짧아지고 실질적이면서 기능적으로 변했다.
색채는 밝고 채도가 높은 색채에서 대채로 가라앉은 색조인 회색, 베이지색, 크림색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여자 복식에서 실용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대전을 거치는 4년 동안 630만이 넘는 젊은 남자들의 희생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직업활동, 정치적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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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The Young Ladies Journal 1905

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Belle epoque)로 불리웠던 1890년대의 여성 패션은 소재에서도 디자인에서도 매우 사치스러웠고 호화스러웠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제기된 복장 개혁은 신예술운동인 아르누보(Art Nouveau)의 영감에 의해 단순화된 디자인, 생동감 있는 색채, 새로운 장식 방법을 등장시켰다.
1890년에서 1910년에 이르기까지 복식은 점점 단순해져 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1900년대의 여성 복식은 여전히 장식적이고 탐미적이었다.

1900년대 초반, 드레스와 스커트 밑에서 골반을 최대한 과장해주던 버슬(Bustle)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스커트는 여자들에게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몸매 굴곡을 강조하기 위해 주름을 잡은 플레어 스커트(flare skirt)를 입었고 허리부터 허벅지까지를 타이트하게 보이기 위해 고어스커트(gore skirt)를 입었다.
코르셋은 더욱 보강되어 허리를 가늘게 조였으며, 강조된 힙에 상대적으로 가슴은 앞으로 내밀게 되므로 옆에서 본 모양이 S자 형태를 이루게 되는 S커브 스타일(S-curve style)이 유행하게 되었다.
소매는 어깨쪽을 크게 부풀리고 손목은 꼭 맞는 레그오브머튼 소매나 퍼프소매가 인기있었다.
앞가슴에 장식을 늘어뜨린 블라우스, 풍성한 웨이브의 헤어스타일과 엄청난 장식의 모자도 인기를 끌었다.
이 무렵 만화주인공 '깁슨 걸'은 자신감 넘치는 젊은 여성을 대변하면서 신여성의 상징으로 생각되었고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받아들여 졌다.
깁슨 걸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스포츠에 열광했고, 이 시기의 스포츠는 이성을 만나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자, 장갑, 핸드백은 여자들에게 필수적인 외출용 장신구였다.
여기에 더불어 여름에는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겨울에는 머프를 착용했다.
고도로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깃털 목도리, 부채 등은 이브닝 드레스를 완벽하게 하는 장신구였다.
남자들은 포켓 행커치프와 장갑, 지팡이를 애용했고 값비싸고 번짝거리는 타이 핀, 셔츠 버튼, 커프스 링크스를 과시했다.
손목시계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시절, 차마시는 시간인 오후 5시는 여자들이 코르셋의 압박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위해 걸치는 티가운(tea-gown)은 여자들에게 필수적인 이지웨어 아이템이었다.
1908년 폴 포와레가 등장해 하이웨이스트와 수직으로 떨어지는 실루엣의 엠파이어 토닉 스타일(Empire tonic style)을 대유행시키고 나서야 여자들은 코르셋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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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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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유행이란?

자라면

ⓒArtComments

유행, 트렌드라는 말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스타일의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변화시켜 놓고 트렌드가 된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유행을 주도하는지 궁금해 한다.
유행은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하고픈 욕구로부터 생겨나고, 패션리더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패션업계의 종사자 또는 광고업자에 의해 시작되거나 확산된다.
예들 들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스타일이 패션 테마가 된 것은 패션 잡지의 편집장들에 의해서였다.
반면에 오드리 헵번이나 마돈나의 스타일은 홀로 트렌드를 창조한 패션리더였다.
또한,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모두 패션을 응용 미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에 뛰어난 패션은 당시에 유행하는 순수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히 말하는 '유행'은 좀 광범위한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용어를 각각의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 구분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모드(Mode) - 예술적인 창작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단계다.
2. 패션(Fashion, Vogeu) - 지금 현재 널리 전파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는 복식의 유형.
3. 스타일(style) - 패션이 대중 속에 침투되어 일정 기간 이상 머물면서 정착된 복식의 유형
4. 클래식(Classic) - 지속적이고 시기를 초월한 스타일로서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선호되어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복식.
5. 패드(Fad) -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선호되었다가 빨리 사라져버리는 주기가 매우 짧은 유행.

군가가 유행을 어느 시기에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패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적응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의 스타일에 관심있는, 돋보이고 싶은 여자라면 누구나 유행이 시작되는 도입단계에서 미리 알고싶어 할 것이다.
다행히도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신호를 보낸다.
예를 들면 혁신적인 스타일이 둘 이상 동시에 패션마켓에 등장했다든지, 기존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극과 극에 해당하는 스타일이 나타났다든지 하는 것들은 종종 새로운 트렌드 등장에 대한 신호가 된다.

나간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가올 유행이 보내는 신호를 좀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위의 그림을 보면, 트렌드의 변화는 종종 지금과 정반대의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음 글부터는 20세기의 각 시기별로 어떤 트렌드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셀룰라이트 다루기


신이 여자라면 셀룰라이트라는 단어를 알게 되셨다는 사실에 대해 일단 깊은 유감을 표하고 싶어.
셀룰라이트는 일단 생기면 정말 없애기 어려운 고약한 놈이지.
피부를 오렌지 껍질처럼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그 못된 녀석이 주는 스트레스는 정말 만만치 않은데 더 괴로운 사실은 셀룰라이트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스트레스라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내 몸에 일단 셀룰라이트가 발견되면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들기 쉽다는 거야.
글 제목이 '셀룰라이트 없애기'가 아니라 '셀룰라이트 다루기'가 된 것도 이 골치거리는 단시일 안에 어떻게 할 수 없는 강적이라는 사실 때문이지.


룰라이트는 주로 엉덩이, 허벅지, 팔뚝, 아랫배, 무릎 주변에서 발견된다.
그 정체는 지방과 노폐물들이 고루 퍼지지 않고 섬유질에 둘러싸여 특정한 부위에 뭉쳐있는 것.
이게 점점 커져서 피부밑 진피층으로 밀고 올라오면 피부 표면이 불규칙하게 울퉁불해지는 거야.
셀룰라이트는 타고난 체질의 영향도 받지만,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인 사람, 편식이 심한 사람, 임산부에게 특히 잘 나타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거의 여자에게 나타나지.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더 쉽게 생겨난다.

룰라이트는 딱히 비만 체형이 아니어도 나타날 수 있는 부분비만의 한 형태야.
부분비만을 처음 다룰 때부터 말했듯이, 버럭 스타일의 무리한 다이어트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부분비만의 가장 큰 원인이지.
오랜 운동부족으로 근육량이 감소해 있다면 기초대사량이 낮아 지방이 쉽게 쌓일 수 있다.
또,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울혈, 부종이 잘 생긴다면 더 쉽게 생겨난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것도 지방합성을 촉진하고 고인슐린혈증을 유발해서 나쁜 영향을 미친다.
좀 굵어진 특정부위를 가늘게 보이려는 욕심에 꽉 조이는 타이트한 옷을 입으면, 역시 셀룰라이트가 생기는 큰 요인이 되니까 조심하시기 바래.
거기다 동물성 음식과 단 것을 좋아하고 식사량이 심하게 들쭉날쭉한 나쁜 식습관까지 가지셨다면 셀룰라이트는 숙명이다.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아시아계는 백인들에 비해 셀룰라이트가 덜 생기는 편이고, 생겨도 눈에 덜 띈다는 점이다.
백인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배우나 가수들은 모두 셀룰라이트가 노출된 굴욕사진이 몇장씩 다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흔하고, 고민 역시 많지.

까 말했듯이 셀룰라이트라는 놈은 일단 한 번 생기면 정말 없애기 어려운 놈이다.
그래서 생기기 전에 예방이 중요한데, 이 글을 관심있게 읽으시는 사람은 이미 갖고 계신 상태라고 봐야겠지.
셀룰라이트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가면 거의 대부분은 지방흡입을 권할거다.
다른 방법들은 아주 긴 시간에 걸친 관리가 필요한 데 반해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겠지.
문제는 이 치료법이 내 생각처럼 싸고 간단하고 안전한 치료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리고,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하신다면 조만간 없앴던 셀룰라이트는 다시 생길거야.
그 때도 똑같은 치료법을 동원해 그 과정을 평생 반복할 생각이 아니시라면, 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으셔야지.

CCL by FLOODkOFF

단 식사습관부터 살펴보자.
혹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원푸드 다이어트같이 무리한 저칼로리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면 빨리 중단하시기 바란다.
균형잡힌 적절한 칼로리를 섭취하면서 신체활동량을 늘여 칼로리를 소모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 세끼를 모두 먹으면서 매끼 섭취하는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가장 권장되는 식사 조절 방법이다.
끼니를 건너뛰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만 끼칠 거야.
동물성 지방과 당분의 섭취는 줄이셔야 하고, 채소를 많이 먹는 습관을 들이시도록.
매일 2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는 것은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출에 도움되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 양쪽으로 효과적이야.
해조류는 칼로리도 낮고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효과가 크니까 많이 드시기 바래.

동은 셀룰라이트 관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
어설픈 지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셔.
종류와 부위에 상관없이 체내지방을 연소하는데 운동은 필수적이다.
만약 강도가 높은 심한 운동을 하는 동안은 혈액이 근육쪽으로 몰려 상대적으로 피부와 피하지방에는 충분한 혈액공급이 이루어 지지 않지.
특히 셀룰라이트가 형성되어 있는 부위에는 미세순환장애가 있어 그나마 공급되던 혈류의 양이 줄면서 지방대사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지방을 효과적으로 연소시키기 위해서는 유산소운동을 꼭 해주셔야 해.
하지만, 강도가 높은 운동을 짧게 집중적으로 하기보다는 강도가 낮은 운동을 길게 하고 꾸준히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균형잡힌 전신 운동인 요가와 필라테스도 권하고 싶어.
요가는 동작뿐만 아니라 호흡과 명상까지 겸해서 익히면 스트레스 관리와 신진대사 및 순환개선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셀룰라이트 예방효과도 있다.

동과 병행해 줄 부분마사지는 혈액과 림프액 순환을 좋게 만들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야.
유산소운동을 충분히 해준 후에는 체온이 오르고, 근육이 이완되고, 혈액은 열심히 순환하면서 지방을 분해하고 있다.
이 때 마사지를 병행해 주면 셀룰라이트가 생성된 부분의 순환장애가 개선되어 좀 더 효과적인 마사지가 될 수 있다.
셀룰라이트는 생성 원리부터가 지방이 뭉쳐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풀어주기 위해서는 피부마사지를 할 때 보다 더 강하게, 꼬집는다는 기분에 가깝게 마사지해 주셔야 해.
한 부위에 10~15분 이상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마사지해 주시기 바란다.

ccl by dbadagna

렇게 강한 마사지를 해주려면 피부 자극을 줄일 마사지 오일이 필요하실거야.
셀룰라이트 전용 크림이나 오일을 써도 되겠지만, 유명한 외국 화장품회사들의 제품들도 모두 과장광고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은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적당한 가격에 성분표시 확실하고, 안전하면서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찾아서 쓰시길.
만약 그런걸 못찾겠거든 천연 아로마오일을 만들어서 쓰자고.
'존슨네 아기 기름'은 주원료가 석유라서 어른에게 별로 권장할만한 제품이 아니야.
호호바오일은 좀 비싸지만 안전하고 장점이 많은 오일이다.
조금 럭셔리한 오일을 원한다면, 에센셜 오일을 약간 추가해주면 좋아.
호호바오일 50ml 기준으로 사이프러스 10방울, 그레이프프룻 10방울 정도만 첨가해주시면 아주 럭셔리한 아로마테라피 셀룰라이트 마사지 오일이 된다.
마사지 요령은, 마사지할 부분의 힘을 빼 근육이 이완된 상태에서 손바닥으로 눌러서 둥글게 돌리고, 손가락으로 집어올려 뜯는 듯한 동작을 반복해 주시면 된다.
맨 밑의 동영상은 셀룰라이트 마사지의 예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참고하시기 바래.

약해 볼까.
셀룰라이트는 한 번 생겨나면 단시일 안에 없어지지 않는 고약한 놈이다.
평소에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생겼으면 6개월 이상 장기 계획을 세워 관리해줘야 한다.
셀룰라이트 예방과 치료에는 지방 분해촉진, 혈액순환 개선, 노폐물 배출이 중요하다.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식습관을 갖는것이 좋고, 폭식과 단식의 반복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낮은 강도의 유산소운동과 요가를 꾸준히 해주는 것이 좋다.
부분마사지는 운동과 병행할 때 더 효과가 좋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부분비만'에 관한 글들입니다.

▷ 부분비만, 제대로 알기
▷ 하체비만
▷ 팔뚝살빼기
▷ 복부비만
▷ 셀룰라이트 다루기
▷ 산후비만, 예방과 관리

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세탁기, 제대로 쓰고 계신가요?

CCL by evan romine

마 집집마다 있는 세탁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나오는 세탁기들은 모두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다 처리해 주는데?
당연히 세탁기버튼 누르는 방법 얘기를 할 건 아니고, 대리점에서 알아서 해주는 설치방법 얘기도 안할거다.
세탁기를 쓸 때마다 조금만 더 신경쓰면 옷 손상은 줄이면서 훨씬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는데 그냥 귀찮아서, 아니면 몰라서 그냥 넘기고 있는 부분들을 꼬집어볼 작정이다.
특히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성능이 불만스러우신 언니나 세탁기를 새로 사려고 하시는 언니는 먼저 읽어보면 좀 도움이 될거다.

◎ 일반세탁기? 드럼세탁기?

집집마다 드럼세탁기를 장만하는 것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다시 일반세탁기가 잘 팔린단다.
와류형의 일반세탁기가 아무래도 세척력이 더 좋아서 한국 여자들의 깔끔한 취향을 더 잘 만족시켜주기 때문이겠지.
드럼세탁기는 원래 유럽의 생활스타일에 적합하게 설계된 제품이라 걔네들의 입맛에 맞춘 부분들이 많다.
그 동네는 전기료가 싸고 물값이 비싸기 때문에 물은 적게 쓰고 전기를 좀 더 쓰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외국산 제품을 갖고 있다면 걔는 국산 제품과 비교하면 전기먹는 하마 수준일거다.

CCL by elaine faith

드럼세탁기의 장점은 일단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건조까지 되는 사용의 편리함일 거야.
세탁방식은 낙차식이라 섬유간 마찰과 엉킴이 적기 때문에 옷의 손상도 적다.
반면에 단점은 오래 걸리는 세탁시간과 상대적으로 약한 세탁력, 그리고 건조까지 할 경우 전기소모량이 엄청난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가격이 비싼 점과 상대적으로 고장이 잦은 것도 구입 전에 고려해봐야 하겠지.
와류형 일반세탁기는 드럼세탁기와 장단점을 반대로 생각하시면 될 듯.
결국 편한 것 위주로 생각한다면 드럼세탁기가 좋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옷감손상을 줄이는 요령을 갖췄다면 일반세탁기가 여러 모로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 세탁준비물

세탁기를 제대로 쓰기 위해 옆에 준비해 두셔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다.
섬유 종류에 따른 알칼리성 세제와 중성세제 그리고 섬유린스는 이미 갖고 있으시겠지.
그 외에 두개 이상의 빨래바구니, 크기가 다양한 세탁기용 그물망 여러개, 대야를 준비하셔야 한다.
그리고  낡은 수건, 스폰지, 500~1000ml 정도 되는 플라스틱 밀폐통이 필요해.
각각의 준비물들이 어떻게 쓰이는 지는 지금부터 세탁기를 사용하는 순서대로 쫓아가면서 알아 볼거다.

◎ 세탁물 분류하기

일단 빨래를 색상이 어두운 것과 밝은 것으로 나눠서 따로 세탁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손빨래를 해야하는 것들은 아예 세탁기에 넣지 말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으실 거야.
이불이나 코트처럼 큰 빨랫감과 양말, 속옷처럼 작은 것을을 같이 세탁기에 넣으면 큰 놈들이 작은 애들을 감싸버려서 세탁이 제대로 안되니까 따로 세탁해야 한다.
주머니에 든 동전이나 머리핀, 뗄 수 있는 금속 장식품, 옷에 묻은 흙이나 모래는 미리 없애주셔야만 해.
요런 것들이 세탁기에 들어가면 고장의 원인도 되지만, 세탁되는 동안 계속 옷과 마찰을 일으켜 손상을 줄 수도 있거든.
만약 오염이 심한 세탁물이 있다면 요것도 따로 세탁해주시는 센스가 필요하다.
오염이 심한 것과 덜한 것들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깨끗한 세탁물이 재오염된다.

지퍼나 단추가 달린 옷은 지퍼와 단추를 잠그고 뒤집어 주셔야 된다.
보풀이 잘 생기는 옷들도 미리 뒤집고, 청바지처럼 물빠짐이 있는 옷들도 뒤집어서 빨면 물빠짐이 더 고와지니까 참고하시기 바란다.
긴 끈이 달린 것들은 끈을 미리 묶어줘야 엉킴을 막을 수 있다.
세탁망은 옷의 손상을 예방하는데 꼭 필요하니까 즐겨 사용하시기 바래.
특히 일반세탁기를 사용한다면 어지간한 옷들은 세탁망에 집어넣는 것이 현명하다.
세탁망에 넣을 때도 분류가 필요해.
두껍고 무거운 섬유들과 가볍고 약한 섬유들은 따로 분류해서 다른 세탁망에 넣어주시길.
세탁망의 크기는 세탁물을 넣고 나서 30~50% 정도 공간의 여유가 있는 놈으로 골라주는 것이 센스.

◎ 세제의 선택과 준비

세제의 종류는 다른 글에서 썼으니까 그걸 읽어주시기 바란다.

세제는 종류와 상관없이 '표준사용량'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써도 세탁력은 더 좋아지지 않고 섬유 손상만 일으킨다.
세제의 표준사용량은 포장용기 겉면에 써 있으니까 꼭 읽어보시기 바래.
세탁기에 들어가는 물의 양은 보통 최고 수위일 때 90~100리터이고, 한 단계가 낮아질 때마다 15리터씩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드럼세탁기는 거품이 덜 나고 잘 녹는 전용세제를 사용해야 되고, 표준사용량을 지키는 것이 특히 더 중요하다.
헹굼이 약해서 세제 찌거기가 빨래에 남기 쉽거든.

세제는 종류에 상관없이 사용하기 전에 약간의 준비를 해줘야 된다.
아까 준비한 플라스틱 밀폐통에 표준사용량의 세제를 넣고 물을 70% 정도까지 받은 다음에 완전히 녹을 때까지 밀폐통을 사정없이 흔들어 주시라.
혹시 산소계 표백제 성분을 같이 넣었을 때는 밀폐통을 오래 닫아놓으면 터질 수 있으니까 조심.
세제를 미리 녹이는 것은 세탁력을 높이고 세제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데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니까 꼭 이렇게 사용하시기 바란다.
일반세탁기면 원하는 만큼의 물을 먼저 받고 녹여둔 세제를 넣은 다음 공회전을 3~4번 시켜서 완전히 섞이도록 한다.
드럼세탁기이면 세탁물을 넣은 뒤 물을 받는 동안 세제투입구를 이용해서 녹여둔 세제를 천천히 부어주면 물과 세제가 잘 섞일거야.

◎ 애벌빨래

좀 귀찮은 과정이긴 하지만 얼룩이 있거나 양말, 와이셔츠처럼 특정한 부위에 오염이 심한 옷들은 가벼운 애벌빨래를 해주면 세탁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
신경써서 손빨래를 해주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귀찮으면 스폰지로 간단하게 처리해 주기만 해도 효과가 좋다.
낡은 수건을 한장 밑에 깔고, 부드러운 스폰지에 아까 녹여둔 세제를 묻혀서 오염된 부위의 섬유결을 따라서 문질러 주시라.
스폰지 대신 솔을 써도 되는데, 보통 시중에 팔고 있는 솔들은 청소용이라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옷을 상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쁜 색깔의 착색된 스폰지들은 물이 빠져 옷을 오염시킬 수 있으니까 반드시 착색이 되지 않은 스폰지를 사용하시기 바란다.

◎ 물의 선택.

세탁기에 쓸 물의 양은 일단 모든 세탁물들이 완전히 잠길 수 있는 높이여야 한다.
전골이나 찌개처럼 물이 자박자박해서는 빨래가 제대로 되지도 않고 옷감만 상한단 말이지.
일반세탁기일 경우 아까 미리 받아놓고 세제를 녹인 물에 세탁물들이 충분히 젖어서 잠기도록 푸욱 눌러주실 것.
세탁물이 물 위로 둥둥 뜨면 물과 세제에 닿는 부분이 적으므로 당연히 세탁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물의 온도는 세탁력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물온도가 너무 낮으면 세제의 용해도가 떨어지고 반응성도 떨어져 세탁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물온도가 높을수록 때가 깨끗하게 지겠지만, 섬유의 손상도 같이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해.
일단 옷의 변형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찬물 사용이 원칙이다.
여름에는 수돗물의 온도가 20℃ 이상 되기 때문에 굳이 온수를 섞지 않아도 세탁이 잘 되지만, 한겨울에는 온수를 좀 섞어주는 것이 세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거야.

대로 보일러에서 쏟아지는 뜨거운물만 그대로 세탁기에 부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실 것.
세탁기의 삶기 기능은 순면기저귀 빨 때에만 써먹을 수 있는 정말 쓰레기같은 기능이니까 옷을 세탁할 때는 절대 쓰지 마시길.
물의 온도는 흰색, 연한 색의 옷들을 세탁할 때에는 35℃ 이하, 진한 색의 옷들은 3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40℃ 이상의 물을 사용하는 것은 세탁전문가도 아주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삶아빨기' 방법에 해당한다.
조금 더 깨끗하게 빨아보겠다고 섣불리 시도해 봤다가는 낭패보기 딱 좋다.

◎ 헹굼, 탈수, 건조 기능

일반세탁기를 사용할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헹굼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섬유유연제를 들이 붇는 것이다.
섬유린스에 대한 글에서 따로 썼으니까 자세한 건 생략하고, 아무튼 표준 사용량만 사용하시라고.
만약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모두 잘 지켜줬다면 추가 헹굼은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래도 찜찜하게 여겨지거든 가볍게 한 번만 추가헹굼을 하시기 바란다.
추가 헹굼 과정에서 쓰는 물은 찬물을 써야 말릴 때 구김이 덜하니까 참고하시기 바래.

세탁망을 사용했으면 탈수 과정에서 일어나는 섬유의 변형이나 손상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일반세탁기의 경우 탈수과정은 보통 10분 가까이 돌아가는데 꼭 이 과정이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세탁기 배수구를잘 지켜보면 처음 3분이 지나면 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뚜껑을 확 열어젖히지는 위험한 짓은 하지 마시라.
정지버튼을 누르면 알아서 멈춰 줄테니까.

드럼세탁기는 건조기능이 붙어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기능만큼은 정말 사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기능이다.
제대로 마르지도 않으면서 전기는 엄청나게 먹을 뿐만 아니라 만약 덜 지워진 오염이나 세제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옷에다 말려붙여버리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기능이다.

◎ 세탁기 관리하기

지금 멈춰 있는 세탁기에 머리를 들이밀고 냄새를 한 번 맡아 보시기 바란다.
무슨 냄새가 나지?
퀴퀴한 곰팡내나 쉰내가 난다면 세탁기 관리를 너무 안해주셨다는 증거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좋아하지 마시라고.
습관적으로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너무 많이 쓰셨고. 지난번 빨래는 제대로 헹궈지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평소 세탁기에서 관리해줘야 하는 부분은 두가지다.

CCL by dotbenjamin


먼저 보풀과 실밥을 제거해주는 거름망 부분이다.
세탁기마다 달려있는 위치와 모양은 다르지만 자주 청소해 줄수록 좋은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에 모인 실밥은 때와 세제찌꺼기와 곰팡이를 저축하는 기능을 하니까 틈날 때마다 자주 치워주시는게 여러모로 이롭다.
다음은 세탁조를 청소해주는 거다.
세탁조는 안팎으로 천천히 때가 끼는데, 언제나 습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곰팡이도 피고 세균도 잘 자란다.
요즘 나오는 드럼세탁기에는 세탁조 청소기능이 있으니까 매뉴얼대로 해주시면 된다.
우리집 세탁기에 그런 기능이 없으면 마트에 갔을 때 세제코너에서 '세탁조 청소용 세제'를 하나 사오시기 바란다.
사용 방법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설명하긴 어렵지만 포장 겉면에 자세히 써있을테니까 그대로 잘 따라하면 되는데, 쓰는 것보다 잘 헹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세탁조 청소는 자주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시다면 지금 당장 한 번 해보는 것이 좋다.
세탁기가 생각보다 끔찍한 상태일 수 있거든.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바른 세탁법'에 관한 글들입니다.

▶ 빨래는 과학이다
▶ 세제, 바로 알고 바로 쓰기
▶ 향기 나는 섬유린스?
▶ 손빨래 제대로 하기
▶ 세탁기, 제대로 쓰고 계신가요?
▶ 드라이클리닝 해주세요
▶ 청바지의 올바른 세탁법


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모자 이야기

믿
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모자는 그것을 쓴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준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문화에서 모자는 계급의 표시로 이용되었어.
그 이유는 아마도 모자는 정말 쉽게 눈에 띄고 그것을 쓴 사람의 키를 키워 주기 때문이겠지.
또 하나의 이유는 모자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기관, 바로 인간의 두뇌와 아주 가깝게 있기 때문일거야.
대성당 안에서 거행이 되건, 아프리카의 벌판에서 거행되건 간에 상관없이 대관식은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획득했음을 기념하는 행사이고, 권력의 상징은 바로 그 화려한 '모자'인 것이지.
인사할 때, 또는 존경의 표시로서 모자를 벗어 보이는 것은 굴복의 표시로 옷을 벗는 원시시대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한계급론」같은 책에는 우아한 신사들이 번쩍거리는 커다란 실크햇을 쓰는 이유가 '나는 누구도 도와주기 싫고 쓸모있는 일을 할 수도 없다'는 선언을 모자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써있다.

신병리학자들과 가발상인들은 숱이 많은 머리털은 흔히 남성다움, 마초스러움의 표식으로 통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아주 다양한 남성용 모자가 머리털을 가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이론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독수리 깃털 모자, 영국 근위병의 곰가죽모자, 이탈리아 저격병의 둥근 깃털 모자,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수비대의 빨간 깃털장식 모자 등을 떠올려보면 왠지 머리털과 닮은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영국 근위병의 상징물 같은 특대사이즈 곰가죽모자가 사실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근위병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척단 근위대가 나폴레옹 근위대를 쳐부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빼앗아 쓰기 시작했다는군.
영어로 'a feather in one's cap'이라고 하면 '명예'란 말인데 이건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인디언 전사의 머리장식에 깃털을 추가하는 것은 적을 한 사람 죽였다는 표시라는 것을 백인들도 알게 되었거든.
헝가리에서도 적국인 터키인을 살해한 사람만이 모자를 깃털로 장식할 수 있는 명예를 얻었다고 한다.

좀 덜 살벌하게는 스포츠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어.
영국에선 크리켓 경기에서 3타석 연속으로 타자를 아웃시킨 투수에게는 클럽에서 돈을 모아 새 모자를 사줬다고 한다.
이것이 발전해 하키나 축구에서 3골을 기록한 것을 '해트트릭(hat trick)'이라고 부르게 되었지.

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은 커다란 모자를 쓰는 게 보통이다.
앗시리아인들의 탑처럼 생긴 원추형의 모자, 미국에 처음 건너온 청교도들의 챙이 넓은 검은 모자, 로마교황의 삼중관,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널찍한 갓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을거야.
여자들은 계급을 밝힐 기회가 더 적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는 물건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졌다.
율법시대에 유태여성의 머리장식은 남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지시받았는데 그 머리장식의 일차적인 목적은 정숙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직 남자를 차지하지 못한 처녀에게는 어느 정도는 자기 선전이 허용되었어.
그러나 기혼여성은 집 밖에서는 꼭 남편이 골라준 머리덮개를 쓰도록 되어있었지.

Female Football Player

후로 아주 오랫동안 정숙함보다는 유행을 따르는 패션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모자가 사용되어 왔어.
유행은 때론 패션계에서 모자를 완전히 몰아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반드시 모자를 쓸 것을 고집하는 그들만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광부, 미식축구선수, 양봉업자, 심해잠수부 그리고 중국집 배달부처럼 특히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모자가 반드시 필요하잖아.



나는 비만일까?


워 후 거울을 볼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난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살쪘다'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여자들은 그만큼 자기의 체형에 만족을 못한다는 얘기지.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비만, 또는 부분비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바른 정의는 내 머리 속에 있는 것하고는 좀 다르다.
멋진 몸매인지 아닌지를 떠나 먼저 의학적으로 내가 비만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줄자와 계산기 그리고 체중계를 준비한 다음 스스로 진단을 내려보자.
먼저 자기의 정확한 키와 몸무게를 재셔야지.
기존에 알고 있는 체중과 키는 무시하시길.
지금 자와 체중계 눈금에 나온 값이 나의 진실이니까.
계산은 별로 어렵지 않아.

◎ 체질량지수 측정법

비만을 평가하는 여러가지 기준 중에 가장 쉬운 척도는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이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볼까?
내 몸무게가 55.0kg이고 키가 160cm(=1.6m)인 경우에 체질량지수는 55.0/(1.60x1.60)=21.5 가 되는거지.
나온 값을 밑의 표와 비교하면 바로 진단이 된다.

 분류BMI값
위험도
 저체중 < 18.4
 낮다
 정상 18.5~22.9 보통
 위험체중 23~24.9 증가
 1단계비만 25~29.9 중등도
 2단계비만 > 30.0
 고등도

이 표는 아시아계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에게 적용되는 값이다.
WHO에서는 25 이상부터 과체중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아시아인들에게는 위의 표가 더 정확하단다.
이 값은 운동선수, 임산부, 유아, 어린이, 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상대체중 측정법

상대체중(Relative weight)은 BMI보다 덜 쓰이지만 비만 진단에 쓰이는 지표 가운데 하나야.
먼저 내 키에 맞는 표준 체중을 계산해야 하는데, 아시아계 성인은 밑에 있는 변형된 Broca 공식을 써서 계산하시면 된다.

 키공식
 150cm 이하일 때
 표준체중 = (키-100) x 1.0
 150~160cm일 때
 표준체중 = (키-150) ÷ 2 + 50 
 160cm 이상일 때
 표준체중 = (키-100) x 0.9

내 몸무게를 위에서 구한 표준체중으로 나눠서 100을 곱한 값이 상대체중값이다.
상대체중값이 90~110% 이면 정상체중이시고 90% 이하면 저체중이시다.
그리고, 110% 이상은 과체중, 120% 이상은 경도비만, 140% 이상은 중도비만, 200% 이상이면 고도비만이시다.
 
체지방량측정법

좀 더 정확하게 비만도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써서 몸속의 지방량을 측정하기도 해.
먼저 쉬운 방법으로 이두근, 삼두근, 견갑골하부 등의 피부주름두께를 재서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재는 방법에 따라 오차가 너무 심해서 요즘은 거의 안쓰는 방법이야.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생체전기저항분석법(BIA, Bioelectric Impedance Analysis)이다.
집에서 할 수는 없지만 건강검진 받을 때나 휘트니스 클럽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방법이지.
다리와 팔에 약한 전류를 통과시켜 전기저항으로 신체내 수분량을 측정하고 이 값을 바탕으로 체지방량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몸 속의 수분량에 따라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소변을 본 다음에 측정하고 비교해야 좀 더 정확하고 의미있는 값을 얻을 수 있지.

복부비만 판정

복부비만은 건강에 위험이 크기 때문에 따로 체크해줘야만 하는데, BMI 값에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체지방량을 측정하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우리 집에는 그 기계가 없잖아.
큰 병원에 가면 CT로 4번~5번 요추 사이를 단층촬영해서 복부비만을 정확하게 진단해 주겠지만, 그 전에 집에서도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허리둘레를 재보는 방법.
줄자로 정확하게 평상시의 허리둘레를 측정하기만 하면 된다.
배에서 힘을 빼고 배꼽부위에서 바닥과 평행하게 측정한 값이 나의 정확한 허리둘레다.
바지나 스커트 사이즈는 믿지 마시길.
허리둘레를 줄자로 측정했을 때, 여자는 80cm이상 남자는 90cm이상이면 복부비만이시다.
이 값은 간단히 측정이 가능하면서도 내장지방 및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로 인정되고 있다.
그 다음은 허리둘레와 엉덩이둘레의 비율을 구하는 방법
허리둘레 사이즈를 엉덩이둘레 값으로 나눈 값이 여자는 0.85, 남자는 1.0을 초과할 때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내장지방의 반영에 있어서 허리둘레 단독측정보다 덜 예민한 편이지만, 시각적인 효과에 도리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값이다.

근육과 지방의 조화

각자의 BMI지수와 허리둘레를 통해 나의 비만도를 판단해 보셨겠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확한 측정값을 사용하시는 것이 중요하다.
줄자와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래.
그런데, 이 수치들에도 약점은 있다.
근육이 적고 지방이 많은 사람은 BMI와 허리둘레가 모두 정상수치에 들어가는데도 비만일 수 있다.
이 경우가 바로 '마른비만'인데, 체지방량 측정을 했을 때 여자는 30%, 남자는 25% 이상일 때 마른 비만인 거야.

마른비만은 몸무게는 적게 나가지만 몸속에 근육은 너무 적고 지방은 너무 많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으면  건강에 더 위험할 수도 있어.
특히 살이 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굶기 위주의 다이어트를 해왔거나 원푸드 다이어트에 메달렸던 여자들은 마른비만일 가능성이 크다.
 살들이 물렁물렁한 물살이거나, 폭식 습관이 있거나, 술을 즐기는 편이거나, 체격에 비해 힘이 없고 조금만 운동해도 힘들다면 의심해 보셔야해.
하나라도 해당되는 것 같으면 꼭 체지방분석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