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일 수요일

크리스마스 카드와 산타클로스 이야기

난 해

ⓒcursedthing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은 몇 장이나 받으셨나요?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몇 장의 카드를 보낼 계획이세요?
연말연시에 주고받는 인사장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한 해동안 어느 정도 폭넓은 사회생활을 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최초의 인사장은 가장 중요한 날인 새해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집트의 관습은 그 날에 글로 쓴 메시지와 함게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다고 하는군요.
로마인들 역시 1월 1일은 선물을 주고 인사를 하는 날이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인기있었던 선물은 두 얼굴을 가진 신 '야누스'가 새겨진 행운의 동전이었어요.

리스마스 카드는 비교적 잘 알려진 단순한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 경은 너무 바빠 지인들에게 일일히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1843년에 이 카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편지 내용을 쓰는 대신 그는 미술가인 존 호슬리에게 크리스마스의 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 달라고 의뢰해 카드에 복사했습니다.
콜의 아이디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년 뒤, 미국에서는 무료 우편배달제도가 신설되었고, 독일에서 이민온 루이스 프랑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산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에서 캐낸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쓴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나 되는 색을 사용할 수 있었고, 화려한 카드는 명절에 들떠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는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는 가장 감상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시적인 표현을 사용했거나 엄숙한 분위기를 띈 카드들은 잘 팔리지 않았지요.


장 인기있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모델은 역시 '산타클로스'일 거에요.
산타클로스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3세기경 소아시아에서 출생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란 것이 일반적인 정설입니다.
17세기에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성 니콜라스를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모델로 삼았는데, 그 발음이 그대로 영어화되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산타클로스를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만들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만든 것은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파워 1위를 자랑하는 코카콜라 회사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콜라 판매가 비수기에 접어드는 겨울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고심하던 코카콜라는 겨울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산타클로스를 1931년에 광고 캠페인에 등장시켰답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하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해 탄생했다는 거에요.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 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근엄한 성직자의 모습 대신 풍성한 흰 수염에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이었지요.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답니다.
콜라를 즐겨 마신 산타클로스는 세월이 가면서 그림 속에서도 점점 더 뚱뚱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드블룸이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화가였는지는 상당히 의문스러운 일이에요.
옆의 그림은 산타클로스가 CF모델직을 가지기 이전인 1910년대의 크리스마스 카드인데 여기도 비슷한 인상, 복장, 몸매의 산타클로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혹시 산타클로스와 코카콜라에 관련된 이야기 그 자체가 코카콜라의 마케팅 전략인 것은 아닐까요?
다른 설에 의하면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에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에서 였다고 하네요.
본래 날렵하고 키가 컸던 산타클로스가 발그스름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19세기의 만화가 토마스 나스트가 20년간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차츰 완성한 것이라는군요.
그런데 이 삽화들에서는 산타클로스의 옷 색깔이 꼭 빨간 것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산타클로스에게 털달린 빨간 내복을 유니폼으로 입힌 것은 코카콜라가 확실한 모양이에요.

음으로 카드를 주고받은 명절에 관해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명절이 가장 많은 혼란을 일으켰는지도 분명합니다.
바로 발렌타인데이 입니다.
2월 14일에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는 발렌타인 주교의 순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새들이 짝을 짓는다고 생각하던 2월 중순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벌이던 루페르쿠스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날의 의식 가운데 로마의 처녀들이 쪽지에 자기 이름을 써 공공 장소에 설치된 용기에 떨어뜨리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총각들은 이름 하나를 꺼내 새해에 여자친구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젊은 여자친구가 데이트상대였는지 아니면 情婦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지만, 기독교 교회는 이 '사랑의 로또'를 아주 못된 풍습으로 여겨 수백년 동안 이 퇴폐풍조를 없애기 위해 싸웠습니다.
어떤 때에는 처녀들에게 자기 이름 대신 성자들의 이름을 써 넣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자에 의해 영적인 충족을 약속받는 것이 로마 총각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일은 아니었나봅니다.
사랑의 추첨은 공개적인 방법으로든 은밀한 방법으로든 계속되었습니다.

At 1911

발렌타인이 범한 죄목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AD 270년 경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의해 순교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발렌타인 주교는 사랑과 자선으로 특히 유명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는 날로서 그의 기일을 선택했다는군요.
카톨릭 교회는 공식적인 미사 달력에서 다른 많은 성자들과 함께 성 발렌타인을 제외했지만 그의 존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강하게 믿어지고 있습니다.

렌타인 데이는 오늘날에는 즐거운 명절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에서는 발렌타인 카드는 반드시 직접 손으로 만들어야 하고 반드시 독창적인 내용의 문장을 써넣어야만 했답니다.
게다가 글씨체는 둥그스름하고 기울어진 글씨체인 '스펜서체'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를 위한 발렌타인 카드 쓰는 법'이라든가 '사랑의 전율'같은 연애용 작문 교본이 출판되기도 했었죠.
이 책을 참고했던 사람은 사랑하는 상대방이 서점에서 우연히라도 그 책을 열어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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