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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장갑 이야기

즘에야

ⓒ mebrett

장갑이 단순한 패션 잡화 용품이지만, 서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장갑이 사랑의 맹세, 굳건한 우정을 상징하기도 했고, 증오, 저항, 충성심, 명예를 상징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또한 장갑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나 봐요.
그런 예를 보여주는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일 거에요.
그는 페르시아인들의 나약함을 조롱하기 위해 이런 글을 썼다는군요.
"페르시아 놈들은 머리와 몸통, 발을 천으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털로 만든 덮개로 손과 손가락까지도 감싸고 다닌다."
기독교 초기의 도덕학자였던 무소니우스도 '건강한 사람이 부드러운 털로 손을 감싸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며 장갑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A.D. 960년 쯤에는 장갑이 성직자들의 의식용 복장의 일부가 되었지요.

실로 수놓고 보석으로 장식한 장갑은 옛날에는 왕들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변장을 했었지만, 값비싼 장갑만은 벗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갑을 손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왕의 장갑이 왕이 베푸는 보호 또는 호의 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독일에서는 장날이면 국왕의 장갑을 전시하면서 강도와 좀도둑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군요.
아마도 리처드 왕의 장갑처럼 비싼 장갑은 아니었겠지요.
1820년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국왕의 대관식을 거행할 때 장갑을 내던지는 절차가 있었다고 해요.
국왕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자는 누구든지 앞으로 나서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하네요.

자들은 11세기 이전까지는 장갑을 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장갑을 끼기 시작하면서 장갑은 곧 특별한 호의의 상징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지요.
기사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는 귀부인의 장갑을 몸에 지녔다지요.
이름은 전해지고 있지 않은 어느 기사는 카스틸랴왕의 궁전에서 자기가 사모하는 귀부인의 장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 여인네가 기사의 눈 앞에서 우아한 몸짓으로 사자가 우글거리는 구덩이 안에 장갑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에요.
기사도에 따라 이 기사는 주저없이 함정에 뛰어들어 장갑을 꺼내왔지요.
브라우닝의 시에 의하면 그는 장갑을 귀부인의 얼굴 앞에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16세기

ⓒ Catrijin

유럽에서는 흑사병을 예방하는 데에 향수를 뿌린 장갑을 끼면큰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 장갑들이 실제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당시 유럽인들의 극도로 불결했던 사정은 지난번 '속옷 이야기'에서도 한 적이 있으니까...
전염병을 막는 데 약간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밤이면 손을 하얗고 부드럽게 보이는 장갑을 끼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그 목적에 가장 맞는 장갑 재료는 바로 병아리 가죽이었다고 하는군요.
과연 장갑 한켤레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병아리가 몇 마리나 희생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들을 보면 포즈를 잡은 인물들이 장갑을 그냥 손에 들고 있거나 한쪽만 끼고 나머지 한 쪽은 들고 있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행이었거나 아니면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더 간단한 해석에 의하면 당시에 만들어진 장갑들은 그다지 손에 잘 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것이라고 알려진 장갑을 보면 엄지손가락을 넣는 부분의 길이가 12cm나 되거든요.

민들의 경우에는 19세기가 되어서도 한동안은 손에 천조각이나 가죽을 칭칭 감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장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장갑 업계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그자비에 주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주뱅은 프랑스 장갑 생산의 중심지였던 그르노블 출신이었는데 손의 형태에 대해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 연구 결과 1834년에 한꺼번에 장갑 6켤레를 한꺼번에 재단할 수 있는 금속 형틀을 발명해 냈습니다.
그 때부터 장갑은 대량생산될 수 있었고, 표준 사이즈 또한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Pretty woman, 1990

보화, 국제화, 세계화의 시기였던 1990년대에는 20세기의 모든 스타일이 시도되었다.
패션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특별히 어떤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개인이 자기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는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패션의 무게 중심이 디자이너로부터 개인에게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더 이상 패션에 있어서 고정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고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말적인 경향과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스타일에 대한 향수와 복고, 재창조의 경향도 이어져갔다.
90년대 초반에는 60, 70년대풍의 로맨틱 모던 스타일로 여성미를 강조했으며, 복고풍의 유행으로 오드리 헵번과 재클린 스타일이 재등장했다.
비틀스룩에는 1940년대 허리와 가슴을 강조한 글래머룩이 가미되어 산뜻하고 현대적인 섹시룩으로 재창조 되었다.
레이어드 룩은 계속 인기를 이어갔는데 힙합 패션에 응용되어, 80년대식의 레이어드가 아닌 긴팔 위에 반팔 티셔츠를 입는 등 새로운 레이어드 코디네이션이 나타났다.
브랜드 마케팅 전략의 성공으로 샤넬, 디오르, 아르마니, 프라다, 루이비통, 페라가모 같은 명품 스타일이 고급 패션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행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1940년대 글래머룩이 유행했다.
힙합 뮤직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10대를 위주로 흑인풍의 힙합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심플하고 절제된 세련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뉴욕 스타일이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나 밀라노 스타일보다도 더욱 유행했다.
힙합 또는 뉴욕 스타일과 같은 미국발 패션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것은 헐리우드 영화와 미국의 TV 시리즈물, 뮤직비디오가 세계의 극장과 안방을 점령한 데 크게 힘입은 결과였다.
지나친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발로 1998년부터 아방가르드가 대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0년대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스타일보다는 세계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패션의 등장은 국가와 문화에 구속받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 모든 개인들에게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무수한 패션 정보 가운데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로 넘어오면서도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른바 '룩'의 시대는 1970년대 말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고, 1980년대부터는 뚜렷하지 않은 시대로 전환되었다.
세분화와 차별화를 거치면서 개인의 패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아졌고, 의복은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표현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패션 업체의 주요 타겟도 젊은 층을 떠나 연령층이 다소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으로 이동했다.
고유의 상표를 강조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부터의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적 경향은 1980년대 패션의 흐름을 지배했다.

1980년대에는 이란ㆍ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파동으로 세계경제 침체가 계속되었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가치관은 개인의 생활에서 제품의 질적인 추구와 다양화, 개성화를 요구햇다.
반면에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생활영역 확대는 생활수준과 소득의 향상을 가져왔고 건강과 여가를 점점 더 중시하게 되었다.
스포츠 웨어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빅 룩(big look)이 유행하였으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녀 구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크고 헐렁한 스타일의 무채색이었기 때문에 길이는 반코트 또는 롱코트만큼 길어져 엉덩이 부분을 가렸으며 남자 셔츠를 길 게 늘린 듯한 느낌이 드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는 아주 잘 차려 입은 커리어 우먼의 '테일러드룩'으로 1980년대 유행의 창조자가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표현해 주는 의상에 대해 관심과 수요의 증가는 디자이너 상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으며, 베르사체의 메두사 로고, 샤넬의 골드체인백, 모피코트로 대표되는 '리치룩'이 등장했다.
특히, 스포츠 웨어가 필수품으로 등장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운동복과 상표 인지도가 높은 운동화의 인기가 높았다.

주얼 웨어에서 시작된 유니섹스 모드는 여성의 사호활동이 증가하면서 때와 장소의 부별없이 착용하게 된 바지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었다.
젊은이들이 캐주얼하게 입는 옷으로, 혹은 작업복으로 입던 청바지가 1980년대 중반에는 샌드워시(sand wash)된 스노우 진(snow jean)의 유행을 가져왔다.

자, 의복, 스타킹, 구두, 액세서리 등으로 복식전체를 구성하여 코디네이트시킨 토탈 룩(Total Look)이 등장했는데, 토탈룩은 착용자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토탈룩의 등장은 디자이너가 조화시켜 제시한 의상을 선택하던 예전과는 달리 착용자 자신이 직접 새로운 의상을 창조하고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된 안목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layered look

성복은 스포츠웨어의 발달로 캐주얼한 정장 스타일이 착용되었다. 또한 1980년대에 등장한 여피(Yuppie)는 유명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비싼 차를 운전했다. 여피 남성들은 주로 넓은 어깨와 이탈리아풍의 긴 재킷,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바지에 생가죽 구두나 끈 달린 단화를 신고 멋진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착용했다.

을 여러 벌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제시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바지 위에 덧입는 튜닉 원피스나 또는 긴셔츠 위에 조끼와 재킷, 코트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옷길이의 다양화로 멋을 연출한다.
1980년 초에는 캐주얼 웨어를 중심으로 레이어드 룩이 바지와 셔츠, 조끼, 재킷, 코트 사이에서 남성적이고, 세련된 도시풍의 패션으로 유행했다.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의복으로서 여러방법으로 겹쳐 입는 코오디네이션 패션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콘은 마돈나와 다이애나 비였다.
마돈나는 10대 뿐만아니라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란제리 룩, 브래지어 룩 등 자유롭고 섹시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다이애나 비와 찰스 황태자와의 결혼은 낭만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이 절정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입고 걸치는 모든 것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모자를 좋아한 그녀 덕분에 모자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보석 산업 또한 그녀의 보석 수집에 영행을 받아 호황을 누렸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션에서 개인의 개성이 정말로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20~1960년대의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는 복고적인 경향과 더불어 60년대의 스타일이 계속 유행하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을 보인 디자이너도 많아졌고, 등장한 스타일도 많았다.
70년대는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달러 쇼크, 그리고 인플레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불황기로 사회적인 불안 심리가 많이 작용하던 시기였다.
특히 오일쇼크를 계기로 좀더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에서 의상을 선택하게 되었고 다목적 패션이 중시되었다.

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은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을 유행시켰다.
레이어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스타일로 저렴한 옷들을 층층이 겹쳐 입어 색상이나 소재 등에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레이어드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 복고풍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 주류를 이룬 것은 70년대 전반부였으며, 전체적으로 헐렁한 이국풍의 빅 룩, 오버사이즈 룩도 유행하였다.
 


70년대의 가장 흥미로운 스타일은 바로 펑크 패션이다.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펑크패션은 면도날이나 침 같은 날카로운 디테일, 쇠사슬과 금속 징의 팔찌, 장갑, 벨트. 낡은 군화 등의 소품, 모히칸 헤어스타일, 검은 화장이 특징이었다.
하의에는 주로 뒤가 쳐진 검은 색의 판탈롱을 입었다.
이런 것들을 하이패션으로 흡수한 디자이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이었다.
펑크 패션은 아방가르드한 현대의상 아이디어의 근원적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니섹스 현상을 거치면서 남자 복식에서도 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캐주얼화가 가속되었다.
남자들이 드디어 정장 사무복을 벗고 다양한 레저 웨어와 스포츠 웨어를 즐겨 입게 된 것이다.
넥타이 대신 스카프와 크라바트를 착용하기도 했고, 남성핸드백(manbag)도 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후드가 달린 조깅복이 매우 유행했다.

국에서는 기존의 양장점 형태에서 부띠끄로 바뀌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외국의 패션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져 히피룩과 청바지는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토요일밤의 열기》가 일으킨 디스코 붐은 1970년대 말 한국에서도 젊은층의 인기를 끌었다.
디스코 문화는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지면서 펑크 패션, 디스코 뮤직, 디스크 자키가 유행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압과 금기로부터의 해방과 혁신은 60년대의 특징이었고 패션의 변화 속도도 사회의 발전속도만큼 빨라졌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요구를 젊은 디자이너가 패션에 반영했고, 광고와 대중 매체의 표어도 '젊음'이었고, 미국의 대통령도 젊었다.
비틀즈는 대중음악을 혁신했고 앤디워홀은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다.

1960년대의 가장 충격적인 패션의 이슈는 바로 1965년의 미니스커트의 등장이었다.
미니는 60년대 초 디자이너인 자크 델라에이(Jacques Delahays)에 의해 첫선을 보였으나, 65년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와 조안 위르(Joan Huir)에 의해 애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미니스커트는 당시 모델이었던 트위기(Twiggy)의 가냘픈 몸매와 천진난만한 모습의 단발머리(bob hair)와 어울리며 새로운 패션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
1966년을 통해 스커트는 점점 더 짧아졌고, 스커트 총길이가 18인치밖에 안되는 가장 짧은 미니스커트가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었다.

편 미니스커트의 유행과 더불어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인 루디 건릭(Rudi Gernreich)은 1964년 패션계의 화제를 일으킨 탑리스(topless) 수영복을 선보였다.
1964년부터는 비닐, 인조가죽, 금속, 유리 같은 신소재도 패션의 소재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살갗이 비치는 시스루 드레스(See through dress)가 유행했다.

아트(op art)와 스페이스 룩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더불어 블랙 & 화이트, 화이트 & 실버의 미래주의 패션을 가져왔다.
미국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1966년에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은색 가죽과 쇠사슬 갑옷, 다양한 색깔로 물들인 가발, 플라스틱 등의 각종 인공 소재를 이용해 패션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68년에 이에 대한 반발로 로맨틱 룩(Romantic look)이 선보였다.
1967년에는 남녀의 구별이 모호한 유니섹스 패션이 입생로랑에 의해 정착되었다.
로빈 훗 가죽 재킷과 극서부 지방의 가죽 카우보이 바지, 터틀넥 풀오버는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의류가 되었다.
입생로랑은 남성 수트와 유사한 팬츠 수트를 발표하였는데, 속에 브라우스와 조끼를 입고 타이를 맨 모습을 볼 때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의 가장 큰 문화적 현상은 히피의 등장이었다.
미국의 지나친 물질 만능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반발한 반전사상을 내세운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이들이 입고 다니는 히피 룩(Hippie look)을 보면 낡고 해진 청바지 위에 수술이나 징과 같은 장식을 달고, 낡은 부분을 가리기 위해 패치워크나 자수 장식을 하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은 남녀 모두 긴 생머리나 웨이브진 긴머리를 늘어뜨렸고, 머리에 스카프를 매기도 했다.

시대에 와서야 한국의 패션 흐름에 대해 할 얘기가 생긴다.
4.19와 5.16을 거치는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명동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양장점에서는 외국의 유행이 천천히 소개되면서 세계 패션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신우의 오리지날리, 진태옥의 디쉐미는 대표적인 양장점들이었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차림의 귀국장면이 TV에 방영된 것은 대단한 이슈였고, 한국 여자들의 패션을 변화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션의 암흑기는 1차 대전에 비해 더 참혹하고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직물은 부족하고 국가적인 배급제와 법적인 디자인 제한조치 등으로 인해 의복은 고쳐입고 재생해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옷의 디자인은 축소되고 단순화되었다.
전쟁터에서 사라진 셀 수 없이 많은 남자 희생자들을 대신한 여자들의 사회참여도 폭발적으로 늘었고, 여성복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능성이었다.
전쟁 중에는 기능복 형태의 밀리터리 룩이 유행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모자, 굽이 있는 구두, 각진 어깨, 무릎 길이의 짧은 스커트에 재킷과 코트에는 군복 형태의 디테일이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디자인은 있었다.
차분한 색채를 사용했고 값비싼 트리밍은 제외되었다.
여자들이 바지를 주로 입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드레스는 허리를 더욱 가늘게 조인 볼드룩이 등장했다.

쟁 기간동안 패션 디자이너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고 항구도시 뉴욕에 부띠끄를 열었다.
폭탄이 떨어지지 않던 미국은 전쟁기간 동안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패션 모델로 등장시키면서 신흥 디자이너들이 그 시대의 독창적인 패션 제공자로 인식되면서 아메리칸 룩(american look)을 창조했다.

계대전이 끝나자 여성복에는 급격한 실루엣의 변화와 혁신적인 유행이 나타났다.
1차대전 후에 샤넬이 있었다면 2차대전 후에는 디오르가 있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여성스러운 우아함를 강조한 뉴 룩(new look)을 소개하면서 패션계의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파리가 세계 패션의 메카임을 다시 증명했다.
드롭숄더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로 표현된 부르조아적인 스타일은 유니폼에 싫증난 여자들에게 기쁨과 흥분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뉴 룩은 또한 짧게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을 출현시켰고 넓은 테의 모자 또는 아예 테두리가 없는 우아한 모자들을 쓰게 되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공황이 세계를 덥친 1929년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실업,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산은 낙천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여성 의복은 대공황을 계기로 직장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비활동적이고 우아한 여성적인 것이 중시되었다.
허리라인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스커트가 길어지면서 슬림해졌고,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이 되었다.
부드러운 니트와 레이스, 그리고 리본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인체를 부드럽게 드러내 보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출현하게 된다.
30년대 초에는 등을 드러내고 앞가슴을 가리는 홀터(halter) 네크라인의 이브닝드레스가 선보였는데 U자형이나 V자형으로 허리선까지 등이 노출되고 스커트는 플레어지게 한 디자인이었다.
어깨를 각지게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홀쭉하고 긴 롱 앤드 슬림(long and slin)의 여성적인 실루엣이 나타나면서 고어 스커트도 다시 유행했다.

킷과 코트는 날씬하게 신체에 맞았다.
코트는 발목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맥시라인이었고, 견장, 커다란 포켓, 커다란 라벨과 같이 군복에서 차용된 디테일이 특징을 이루었다.
물자 부족과 의복에 대한 각국의 법적 제재로 인해 30년대 말부터는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 슈트인 밀리터리룩이 실용적인 기능복으로 인정받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남성적인 테일러 수트도 여성복으로 정착되었다.
스커트는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가 무릎까지 짧아졌고 매우 두꺼운 어깨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를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39년 쯤에는 실용성 덕분에 스웨터도 널리 보급되었다.

국에서는 라텍스와 슬라이드 패스너(slide fastener, zipper)가 발명되었다.
지퍼는 훅(hook & eye)이나 단추 대신 여밈에 사용하게 되었다.
신축성 좋은 라텍스 천과 지퍼를 이용하여 가장 편안한 실크 코르셋이 제작되었고, 여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체형에 맞는 편안한 실크 코르셋을 입게 되었다.

동적인 스포츠의 인기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복이 디자인되기 시작하였으며, 1936년부터 휴가가 제정되어 신축성있는 직물로 만들어진 원피스 수영복이 착용되기 시작했고 30년대 중반 동안 투피스 수영복이 만들어지기 기작했다.  
테니스와 스케이트복은 과거보다 더 짧아졌고 플리츠나 플레어를 넣었다. 골프용 스커트는 특별히 깊은 플리츠를 넣었고 많은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자들은 턱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에 작은 장식용 모자나 머리에 꼭 맞는 캡을 썼다.
구두의 모양도 다양해지기 시작해서 하이힐, 웨지힐, 두꺼운 밑창이 출현했지만, 바쁜 일상생활에 적합하고 실용적인 낮은 굽의 스타일이 인기였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였고 패션 산업의 전성기였다.
시대 전반에 걸쳐 페미닌 스타일과 모던 스타일이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문화적 영향으로 세계의 모든 다운타운에서는 영화, 재즈음악, 자동차가 넘쳐 흘렀다.
사람들은 영화 속 스타들에게 열광하고 그 스타일을 연구하고 모방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가사 노동을 단축하는 도구들과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여자들은 집을 떠나 사회에 참여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고,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Marie Stopes가 피임법을 전파하면서 여성해방의 물결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Flapper girls

자들의 패션은 직선형 실루엣의 기능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로 표현되었고 당시의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와 모더니즘이 복식에 반영되었다.
직선의 짧은 머리, 어깨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납작한 가슴의 짧은 드레스, 힙까지 낮아진 웨이스트를 특징으로하고 여성의 신체 곡선은 무시하는 실루엣의 보이시 스타일(boyish style)이 나타났다.
1926년에는 기본적인 실루엣을 그대로이면서 여성적인 분위기를 더한 갸르손느 스타일(garconne style)이 등장했다.
이런 당시의 톱 모드를 입는 여성들을 플래퍼(flapper, 말괄량이)라고 불렀다.
플래퍼들은 복식과 행동에서 관습을  깨뜰기고 유행에 관심을 기울여 빨간 립스틱, 보브헤어, 슬리브리스 드레스를 즐겼다.

in 1926

복의 실용성과 활동성도 중요시되면서 옷의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스커트가 짧아진 것은 패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였다.
16세기부터 이어온 가슴, 어깨, 허리에 대한 관심이 다리로 옮겨지면서 스타킹, 벨트, 구두에 더욱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이다.
전통적인 검정 스타킹 대신 장식적인 요소가 더해진 베이지, 갈색, 다양한 색깔의 실크스타킹이 유행했고, 신발은 우아한 펌프스에서 높은 굽의 스트랩 슈즈, 편안한 플랫 슈즈에 이르기까지 앞코가 무척 뾰족했다.
모자는 눈썹을 가리도록 푹 눌러쓴 끌로셰 모자(cloche hat)가 유행했다
스커트의 길이는 1927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땅바닥에서 30~40cm가 되도록 짧아졌다가 이후로 다시 길어졌다.

시대에 유행하던 블라우스와 스커트의 콤비네이션은 없어지고, 힙에 약간의 여유를 준 데이타임 드레스(daytime dress)의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여성의 자유를 반영하고 새 시대의 기계적인 형을 선호하는 표시라고 할 수 있으며, 주로 라운드나 스퀘어 네크 라인인 드레스의 위나 허리부분은 기모노 패션을 잘라 드레스로 만든 모양이었고, 바디 부분은 스트레이트로 떨어지는 모양이었으나 접혀져서 주름이 지기도 했다.
허리선의 경우는 1925년 가장 많이 내려갔다.
이브닝 드레스는 단순한 실루엣이었지만 장식적인 레이스, 쉬폰, 실크로 꾸며졌고 인조보석으로 한층 더 화려한 표면장식을 했다.



성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상류사회 여성들이 긴 털목도리와 양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파고 들었다.
자신이 즐겨 입던 미디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스트레이트 스커트로 구성된 실용적인 옷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20년에는 유명한 샤넬룩을 완성시킨다.

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여자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당시의 레저와 스포츠는 부유함을 상징했다.
스포츠에서도 종목별 목적에 맞는 기능성 의복이 세분화되어서 등장하고, 마침내는 스포츠룩을 발전시켰다.
1920년대 초 가브리엘 샤넬이 여행지에서 그을린 피부로 돌아온 모습이 공개된 이후로는 선탠을 한 그일린 피부가 유행했고, 패션모델과 마네킹의 피부도 구리빛으로 바뀌게 되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기모노 드레스와 호블스커트

자이너 폴 포와레(Paul Poiret)는 그의 전성기인 1910년부터 1914년까지 패션계를 지배했다.
이시기는 유럽 여러 나라들과 중국, 일본과의 교역,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 등으로 유럽의 여자 복식에 동양적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포와레는 패션에 동양적인 강한 원색과 과잉장식, 이국적 패턴과 벨벳과 같은 낯선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했다.
'코르셋에서 해방된 대신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는 말처럼 발목으로 갈수록 스커트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호블스커트도 그의 디자인이었다.

선적이고 추상적인 아르누보로부터 기계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패션은 새로운 문화운동인 아르데코(Art-Deco)의 영향권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패션에서 큰 변화는 1900년대 초반 상류층에 널리 퍼져 있었던 S-실루엣이 사라지고 허리 라인이 점점 내려와 로우 웨이스트(low waist)의 직선형 실루엣이 유행한 것이었다.
여성스러움보다는 단순함을 강조한 자유롭고 개성적인 디자인은 현대복의 성격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상의가 남자 상의와 거의 같은 형으로 변해 더블 칼라의 재킷과 롱 스커트의 테일러드 수트가 유행했다.
하지만, 모자와 머리장식에서는 복식과 반대로 여전히 풍성한 장식과 화려하고 커다란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1914년 7월 28일 이후로 패션계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복은 본격적인 현대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치마길이는 짧아지고 실질적이면서 기능적으로 변했다.
색채는 밝고 채도가 높은 색채에서 대채로 가라앉은 색조인 회색, 베이지색, 크림색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여자 복식에서 실용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대전을 거치는 4년 동안 630만이 넘는 젊은 남자들의 희생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직업활동, 정치적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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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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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유행이란?

자라면

ⓒArtComments

유행, 트렌드라는 말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스타일의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변화시켜 놓고 트렌드가 된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유행을 주도하는지 궁금해 한다.
유행은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하고픈 욕구로부터 생겨나고, 패션리더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패션업계의 종사자 또는 광고업자에 의해 시작되거나 확산된다.
예들 들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스타일이 패션 테마가 된 것은 패션 잡지의 편집장들에 의해서였다.
반면에 오드리 헵번이나 마돈나의 스타일은 홀로 트렌드를 창조한 패션리더였다.
또한,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모두 패션을 응용 미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에 뛰어난 패션은 당시에 유행하는 순수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히 말하는 '유행'은 좀 광범위한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용어를 각각의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 구분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모드(Mode) - 예술적인 창작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단계다.
2. 패션(Fashion, Vogeu) - 지금 현재 널리 전파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는 복식의 유형.
3. 스타일(style) - 패션이 대중 속에 침투되어 일정 기간 이상 머물면서 정착된 복식의 유형
4. 클래식(Classic) - 지속적이고 시기를 초월한 스타일로서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선호되어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복식.
5. 패드(Fad) -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선호되었다가 빨리 사라져버리는 주기가 매우 짧은 유행.

군가가 유행을 어느 시기에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패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적응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의 스타일에 관심있는, 돋보이고 싶은 여자라면 누구나 유행이 시작되는 도입단계에서 미리 알고싶어 할 것이다.
다행히도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신호를 보낸다.
예를 들면 혁신적인 스타일이 둘 이상 동시에 패션마켓에 등장했다든지, 기존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극과 극에 해당하는 스타일이 나타났다든지 하는 것들은 종종 새로운 트렌드 등장에 대한 신호가 된다.

나간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가올 유행이 보내는 신호를 좀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위의 그림을 보면, 트렌드의 변화는 종종 지금과 정반대의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음 글부터는 20세기의 각 시기별로 어떤 트렌드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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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파자마 이야기


세시대에는 남녀가 침대에 오르기 전에 흔히 편안한 나이트캡을 머리에 맨 다음 옷을 다 벗었다.

발가벗고 잤던 거야.
그러나 추운 겨울밤에는 낮에 입던 셔츠를 그냥 입고 잤다.
르네상스시대 이전에는 낮에 입은 옷과 잠옷의 구별은 따로 없었어.
그러나 1600년 경에는 약혼한 남녀가 화려한 잠옷과 그에 어울리는 모자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엔 밤에 열기(?)를 받은 몸에서 김이 날 것에 대비하여 '김이 빠져나가게 나이트캡에 구멍을 내라'고 권한 문인도 있었다.

람들은 헐렁하고 편안한 잠옷을 침대 밖에서도 계속 입으려 했고 또 낮에도 그냥 입을 수 있었으면 했다.
앤 여왕(1665~1714) 시절에 여자들 사이에서는 나이트가운 차림 그대로 길거리를 나다니는 것이 유행해서 사람들이 걱정했다고 해.
그런데 여자살인범이 그런 잠옷 차림으로 나타나 살인을 저지르고부터 그 유행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1800년대 들어서도 남녀를 불문하고 어깨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런 차림을 하면 여자들은 사랑스럽게 보이지만 남자들은 아무래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밖에 없었지.
1870년대 식민지에 나갔던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Pajama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잠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힌두어로 '다리'라는 뜻인 파자마는 헐렁한 바지로 허리부분에 끈이 달려 있었다.

옷이 등장함으로써 마침내 침실에서 남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실내복과 같은 파자마는 중앙난방이 되고 침실에 전기불과 라디오가 등장한 20세기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였지.
1920년대의 한 패션평론가는 이렇게 썼어.
"나이트가운은 일찍 잠자리에 들 때 입는 옷이고 파자마는 침실에 좀 늦게 들어갈 때 입는 옷이다."
그리고 영화 초기 시대에 사랑의 우상이었던 루돌프 발렌티노가 거실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나타나자, 결혼한 여자들은 너도나도 자기 남편에게 그런 파자마를 사서 입혔어.

192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상의를 입지 않고 길거리에 나다니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1929년의 무더운 여름 한때 그 도시의 남자들은 상의대신 파자마 웃도리를 걸치고 출근하는 것이 유행했어.
같은 해 시카고의 신사복 장사들은 여름에 양복을 입는 고행으로부터 남자들을 해방시키려고 도심지 한복판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시위행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파자마를 파티장으로 끌어낸 것은 여성들이었지.
침실에서 입는 편안한 옷이 고급 패션으로 변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