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유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유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스트라이프 패턴 - 다양한 줄무늬의 종류와 이름


무늬, 스트라이프 패턴은 남자든 여자든 가장 쉽게 선택하는 패턴 가운데 하나일 거에요.
잘 입으면 날씬해 보일 수도 있고, 얼굴색이 확 살아나 보이게 할 수도 있는 매력적인 마력을 가졌지요.
유럽에서 스트라이프 패턴의 기원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254년 전쟁에서 돌아오는 십자군들이 파리 시내에서서 선보인 세로 스트라이프 패턴의 망토가 유럽 최초의 스트라이프 스타일이었다고 해요.
그 당시 스트라이프 패턴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부정적이었고, 우스꽝스러운 무늬로 여겼기 때문에 죄수, 정신병자, 하인들에게 강제로 줄무늬 옷을 입혔다고 해요.
지금도 위험을 알리는 신호에 줄무늬가 잘 쓰이는 것을 보면 아직 약간은 그 잔재가 남아있는 것인지도...
16세기가 되어 가로 스트라이프 패턴이 등장하면서 차츰 인식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18세기 말의 초상화에서는 귀족과 왕족들이 스트라이프 문양의 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트라이프 패턴은 기계방직기를 이용해 만든 최초의 패턴이기도 해요.
스트라이프는 스크린 프린트에서는 직물의 조직에 따라 정확하게 인쇄되지 않아 나염보다 직조 직물에서 더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된 줄무늬의 넓이, 반복성, 모양 등에 변화를 줘서 만들어진 다양한 패턴들이 있지요.



◎ 어닝 스트라이프(Awning stripe)
옷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폭이 넓은 스트라이프 패턴입니다. 폭이 6mm가 넘으며 주로 흰색과 단색이 규칙적인 등간격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캐주얼 의류에서 많이 나타나고, 건물 앞의 차양(awning)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블록(Block) 스트라이프라고도 합니다.

벵골 스트라이프(Bengal stripe)
폭 약 6mm 정도의 규칙적인 등간격 스트라이프입니다.

캔디 스트라이프(Candy stripe)
약 3mm 정도 줄무늬의 규칙적인 등간격 스트라이프입니다. 서양의 막대사탕에서 볼 수 있는 패턴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헤어라인 스트라이프(Hair-line stripe)
매우 가는 줄무늬가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는 패턴입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패턴이 아닌 평면처럼 보일 정도로 밀도가 높습니다.

런던 스트라이프(London stripe)
벵골 스트라이프와 유사한 5mm 정도 폭의 등간격 스트라이프입니다.

새틴 스트라이프(Satin stripe)
섬유를 짤 때 평직물과 주자믹물을 교대로 엮어 구성한 스트라이프 패턴입니다. 방직 방법의 차이에 따라 주자직 부분은 광택이 있기 때문에, 줄무늬가 나타나게 됩니다.

티킹 스트라이프(Ticking stripe)
줄무늬가 2개씩 늘어서있는 것으로 사선 무늬 방적이 많습니다. 이불이나 매트리스 커버 등의 침구류에 사용되는 두꺼운 면직물에 주로 사용되었지만, 캐쥬얼 웨어 등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올터네이트 스트라이프(Alternate stripe)
'교대 줄무늬'라는 뜻으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스트라이프가 하나씩 걸러서 교대로 배열한 스트라이프 패턴입니다.



핀 스트라이프(Pin sripe)
핀 과 같은 작은 점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 같은 가는 줄무늬입니다. 줄무늬가 섬유 1~2올 굵기여서 마치 가는 실선이나 점선을 그은 것처럼 보입니다. 핀포인티드 스트라이프, 핀헤드 스트라이프라고도 부릅니다. 조금 큰 점이 연결되어 있는 줄무늬는 도티드(Dotted) 스트라이프라고 합니다.

펜슬 스트라이프(Pencil stripe)
가는 선이 0.5~1cm정도의 간격으로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연필로 그린 것 같은 느낌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모직물에 많이 사용되고 어두운 바탕색에 가는 흰 선의 줄무늬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초크 스트라이프(Chalk stripe)
옷감 위에 분필로 선을 그은 것 같은 느낌의 약간 굵은 줄무늬입니다. 어두운 색의 모직 원단에 밝은 색상의 선을 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선폭은 2mm정도, 간격은 1.5~2.5cm 정도입니다.

스티치 스트라이프(Stitched stripe)
옷감 위에 굵은 실로 바느질을 한 듯한 느낌의 점선형 스트라이프 패턴입니다.

바코드 스트라이프(Bar Code Stripe)
상품에 찍혀있는 바코드처럼 서로 폭이 다른 줄무늬를 매우 가갑게 배열해 만든 패턴입니다. 2가지 이상의 색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섀도우 스트라이프(Shadow Stripe)
줄무늬 하나가 다른 줄무늬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마치 그림자가 진 것처럼 보이는 패턴입니다.

더블 스트라이프, 트리플 스트라이프(Double stripe, Triple stripe)
세로 줄무늬 선이 2줄씩 편성되어 늘어선 줄무늬를 더블스트라이프, 3줄 늘어서 있는 무늬를 트리플 스트라이프라고 합니다.

헤링본 스트라이프(Herringbone stripe)
V자 모양이 반복되는 능직의 일종으로 팔자능 또는 삼능이라고도 부릅니다. 다양한 섬유에 쓰이는 직조법으로써 재킷, 코트지에 많이 쓰이는 형태인데, 체크 패턴과 스트라이프 패턴의 중간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캐스케이드 스트라이프 (Cascade stripe)
줄무늬에 그라데이션 효과를 도입한 것이 특징입니다. 가운데 굵은 줄무늬가 있고 그 양측에 조금씩 가늘어진 줄무늬가 차례로 늘어 선 양쪽 폭포 무늬와 한쪽만이 조금씩 가늘어진 주무늬가 늘어선 한쪽 폭포 무늬가 있다.

팬시 스트라이프(Fancy stripe)
변형된 모양의 줄무늬들의 총칭입니다. 불규칙한 줄무늬나 로프형태, 꽃무늬를 늘어세워 표현한 것 등이 있습니다.

콤피티션 스트라이프(Competition stripe)
줄무늬의 색이 밝은 색으로, 1색 또는 몇가지 색으로된 가로 줄무늬입니다. 스포츠 유니폼 무늬에서 유래했습니다.


ⓒ ~Sage~

외에도 여러 가지 스트라이프 패턴에 다양한 이름들이 붙여져 있습니다.
패턴의 이름은 처음 디자인한 디자이너에 의해 붙여지기도 하지만, 나중에 다른 이들에 의해 임의로 붙여지거나 분류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같거나 유사한 패턴이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상품명을 그대로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더 흔하지요.
그런데, 얼룩말은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일까요?
아니면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일까요?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글들입니다.

체크무늬, 어떤 것들이 있나?
▷ 스트라이프 패턴 - 다양한 줄무늬의 종류와 이름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속옷 이야기

계에서 가장 깨끗하게 산다는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할 얘기지만, 유럽 사람들은 놀랍게도 수세기 동안 거의 몸을 씻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아시는지?
내의가 추위를 막아주는 것 이상의중요한 역할을 해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더러운 몸의 때가 겉옷에 묻지 않게 해주었던 것이지.
규칙적으로 목욕을 즐겼던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습관이 문명세계에 재정착된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의 일이었다는 것이지.

네상스 시대 이전에는 왕의 것이든, 농부의 것이든 내의에서는 멋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
남 앞에 내보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
속옷을 남들 앞에 보이는 것은 간통한 여인이 자기 죄를 자백할 때나, 적을 정복했을 때 그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주기 위해 쓰던 하나의 '형벌'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여왕 시대에 와서는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부자연스럽게 허리를 바짝 조이는 것을 조아하게 되면서 내의는 옷맵시를 내기 위한 기본 수단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어.
여자들은 세겹이 속치마로 몸을 감싸고 다녔지.
부자들은 피부에 낳는 내의로 실크를 특히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촉감이 부드러운 것 뿐만 아니라 모직물에 비해 '이'가 잘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해.

Photo by MathieuB

Old fashioned underwears

15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약 300년 동안 상류층 여자들은 나폴레옹 시대의 헐렁한 '제국식'스타일을 제외하고는 줄곧 상반신을 콜셋으로 무지막지하게 졸라맸고 하반신은 크레놀린으로 옷을 한껏 부풀려 입었다.
그러려면 강철, 가죽, 고래뼈 등으로 만든 장치가 필요했는데, 이 위험한 허영심 때문에 때로는 숨도 제대로 못쉬고 졸도하는 여자들이 즐비했고, 결국 여자는 연약하다는 통념을 만들게 되었어.
여자들이 허리를 어찌나 단단하게 조였던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를 다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해.
어느 분별있었던 아버지는 허리를 조여야한다는 자기 딸들의 강박관념을 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군.
"내 딸들은 서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한다. 그 애들이 허리를 굽히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내 딸들은 항상 배가 아프다고 불평한다."
실제로 딸 하나가 몸을 굽혔을 때 콜셋이 굉음과 함께 파열되면서 그 딸은 땅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다지.

러면 이런 모든 속옷들 속에는 과연 무엇을 입었을까?
영국 여자들은 1700년대 말까지도 속바지를 입지 않았어.
그러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서 무릎 아래를 얌전하게 리본으로 묶는 헐렁한 속바지를 입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여자의 속바지는 품위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속바지란 것이 원래 남성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그러나 유행의 물결을 따라 그런 속바지는 사라지고, 이내 레이스를 단 매혹적인 속바지가 흔들리는 크리놀린 밑으로 살짝 드러나게 되었다.
젊은 남자들이 아가씨를 붙잡고 몇 시간동안이나 스윙댄스를 춘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photo by sunrise.seven

Underwear models

양 남자들 역시 허리를 잘록하게 하거나 다리를 모양있게 보이기 위해 거추장스런 속옷과 패드를 입어야만 했다.
1770년대에는 종아리가 바싹 마른 남자들이 몸에 착 달라붙는 승마용 바지를 입을 때는 장딴지에 패드를 대고 가죽끈으로 꽁공 묶었다지.
여자들이 브래지어 속에 패드를 넣는 것과 비슷한 의도였던 것 같아.
남자들의 코르셋은 별로 언급되고 있진 않지만, 1차대전 때 독일군은 배불뚝이 장교들에게 실제로 콜셋을 지급했었다고 해.
좀 더 근래에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과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도 콜셋을 입었다는군.
미국의 상·하원의원들 중에도 상당수가 몰래 콜셋을 입는다는 얘기가 떠도는데 누군가 사실관계를 확인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Pretty woman, 1990

보화, 국제화, 세계화의 시기였던 1990년대에는 20세기의 모든 스타일이 시도되었다.
패션 경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특별히 어떤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개인이 자기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는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패션의 무게 중심이 디자이너로부터 개인에게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더 이상 패션에 있어서 고정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고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말적인 경향과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스타일에 대한 향수와 복고, 재창조의 경향도 이어져갔다.
90년대 초반에는 60, 70년대풍의 로맨틱 모던 스타일로 여성미를 강조했으며, 복고풍의 유행으로 오드리 헵번과 재클린 스타일이 재등장했다.
비틀스룩에는 1940년대 허리와 가슴을 강조한 글래머룩이 가미되어 산뜻하고 현대적인 섹시룩으로 재창조 되었다.
레이어드 룩은 계속 인기를 이어갔는데 힙합 패션에 응용되어, 80년대식의 레이어드가 아닌 긴팔 위에 반팔 티셔츠를 입는 등 새로운 레이어드 코디네이션이 나타났다.
브랜드 마케팅 전략의 성공으로 샤넬, 디오르, 아르마니, 프라다, 루이비통, 페라가모 같은 명품 스타일이 고급 패션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행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1940년대 글래머룩이 유행했다.
힙합 뮤직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10대를 위주로 흑인풍의 힙합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심플하고 절제된 세련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뉴욕 스타일이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나 밀라노 스타일보다도 더욱 유행했다.
힙합 또는 뉴욕 스타일과 같은 미국발 패션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것은 헐리우드 영화와 미국의 TV 시리즈물, 뮤직비디오가 세계의 극장과 안방을 점령한 데 크게 힘입은 결과였다.
지나친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발로 1998년부터 아방가르드가 대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0년대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스타일보다는 세계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패션의 등장은 국가와 문화에 구속받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 모든 개인들에게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무수한 패션 정보 가운데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로 넘어오면서도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른바 '룩'의 시대는 1970년대 말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고, 1980년대부터는 뚜렷하지 않은 시대로 전환되었다.
세분화와 차별화를 거치면서 개인의 패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아졌고, 의복은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표현 수단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패션 업체의 주요 타겟도 젊은 층을 떠나 연령층이 다소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으로 이동했다.
고유의 상표를 강조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부터의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적 경향은 1980년대 패션의 흐름을 지배했다.

1980년대에는 이란ㆍ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파동으로 세계경제 침체가 계속되었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가치관은 개인의 생활에서 제품의 질적인 추구와 다양화, 개성화를 요구햇다.
반면에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생활영역 확대는 생활수준과 소득의 향상을 가져왔고 건강과 여가를 점점 더 중시하게 되었다.
스포츠 웨어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빅 룩(big look)이 유행하였으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녀 구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크고 헐렁한 스타일의 무채색이었기 때문에 길이는 반코트 또는 롱코트만큼 길어져 엉덩이 부분을 가렸으며 남자 셔츠를 길 게 늘린 듯한 느낌이 드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는 아주 잘 차려 입은 커리어 우먼의 '테일러드룩'으로 1980년대 유행의 창조자가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표현해 주는 의상에 대해 관심과 수요의 증가는 디자이너 상표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으며, 베르사체의 메두사 로고, 샤넬의 골드체인백, 모피코트로 대표되는 '리치룩'이 등장했다.
특히, 스포츠 웨어가 필수품으로 등장하면서 80년대 후반에는 운동복과 상표 인지도가 높은 운동화의 인기가 높았다.

주얼 웨어에서 시작된 유니섹스 모드는 여성의 사호활동이 증가하면서 때와 장소의 부별없이 착용하게 된 바지를 매개로 하여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었다.
젊은이들이 캐주얼하게 입는 옷으로, 혹은 작업복으로 입던 청바지가 1980년대 중반에는 샌드워시(sand wash)된 스노우 진(snow jean)의 유행을 가져왔다.

자, 의복, 스타킹, 구두, 액세서리 등으로 복식전체를 구성하여 코디네이트시킨 토탈 룩(Total Look)이 등장했는데, 토탈룩은 착용자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토탈룩의 등장은 디자이너가 조화시켜 제시한 의상을 선택하던 예전과는 달리 착용자 자신이 직접 새로운 의상을 창조하고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된 안목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layered look

성복은 스포츠웨어의 발달로 캐주얼한 정장 스타일이 착용되었다. 또한 1980년대에 등장한 여피(Yuppie)는 유명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비싼 차를 운전했다. 여피 남성들은 주로 넓은 어깨와 이탈리아풍의 긴 재킷, 밑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바지에 생가죽 구두나 끈 달린 단화를 신고 멋진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착용했다.

을 여러 벌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제시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바지 위에 덧입는 튜닉 원피스나 또는 긴셔츠 위에 조끼와 재킷, 코트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은 옷길이의 다양화로 멋을 연출한다.
1980년 초에는 캐주얼 웨어를 중심으로 레이어드 룩이 바지와 셔츠, 조끼, 재킷, 코트 사이에서 남성적이고, 세련된 도시풍의 패션으로 유행했다.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의복으로서 여러방법으로 겹쳐 입는 코오디네이션 패션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콘은 마돈나와 다이애나 비였다.
마돈나는 10대 뿐만아니라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란제리 룩, 브래지어 룩 등 자유롭고 섹시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다이애나 비와 찰스 황태자와의 결혼은 낭만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이 절정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입고 걸치는 모든 것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모자를 좋아한 그녀 덕분에 모자 산업은 호황을 누렸고, 보석 산업 또한 그녀의 보석 수집에 영행을 받아 호황을 누렸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션에서 개인의 개성이 정말로 존중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20~1960년대의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는 복고적인 경향과 더불어 60년대의 스타일이 계속 유행하기도 했다.
활발한 활동을 보인 디자이너도 많아졌고, 등장한 스타일도 많았다.
70년대는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달러 쇼크, 그리고 인플레 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불황기로 사회적인 불안 심리가 많이 작용하던 시기였다.
특히 오일쇼크를 계기로 좀더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에서 의상을 선택하게 되었고 다목적 패션이 중시되었다.

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신은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을 유행시켰다.
레이어드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스타일로 저렴한 옷들을 층층이 겹쳐 입어 색상이나 소재 등에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레이어드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 복고풍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 주류를 이룬 것은 70년대 전반부였으며, 전체적으로 헐렁한 이국풍의 빅 룩, 오버사이즈 룩도 유행하였다.
 


70년대의 가장 흥미로운 스타일은 바로 펑크 패션이다.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펑크패션은 면도날이나 침 같은 날카로운 디테일, 쇠사슬과 금속 징의 팔찌, 장갑, 벨트. 낡은 군화 등의 소품, 모히칸 헤어스타일, 검은 화장이 특징이었다.
하의에는 주로 뒤가 쳐진 검은 색의 판탈롱을 입었다.
이런 것들을 하이패션으로 흡수한 디자이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이었다.
펑크 패션은 아방가르드한 현대의상 아이디어의 근원적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니섹스 현상을 거치면서 남자 복식에서도 패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캐주얼화가 가속되었다.
남자들이 드디어 정장 사무복을 벗고 다양한 레저 웨어와 스포츠 웨어를 즐겨 입게 된 것이다.
넥타이 대신 스카프와 크라바트를 착용하기도 했고, 남성핸드백(manbag)도 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후드가 달린 조깅복이 매우 유행했다.

국에서는 기존의 양장점 형태에서 부띠끄로 바뀌었으며 통기타와 생맥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외국의 패션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져 히피룩과 청바지는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토요일밤의 열기》가 일으킨 디스코 붐은 1970년대 말 한국에서도 젊은층의 인기를 끌었다.
디스코 문화는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지면서 펑크 패션, 디스코 뮤직, 디스크 자키가 유행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압과 금기로부터의 해방과 혁신은 60년대의 특징이었고 패션의 변화 속도도 사회의 발전속도만큼 빨라졌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요구를 젊은 디자이너가 패션에 반영했고, 광고와 대중 매체의 표어도 '젊음'이었고, 미국의 대통령도 젊었다.
비틀즈는 대중음악을 혁신했고 앤디워홀은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다.

1960년대의 가장 충격적인 패션의 이슈는 바로 1965년의 미니스커트의 등장이었다.
미니는 60년대 초 디자이너인 자크 델라에이(Jacques Delahays)에 의해 첫선을 보였으나, 65년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와 조안 위르(Joan Huir)에 의해 애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미니스커트는 당시 모델이었던 트위기(Twiggy)의 가냘픈 몸매와 천진난만한 모습의 단발머리(bob hair)와 어울리며 새로운 패션으로 창조되기도 하였다.
1966년을 통해 스커트는 점점 더 짧아졌고, 스커트 총길이가 18인치밖에 안되는 가장 짧은 미니스커트가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었다.

편 미니스커트의 유행과 더불어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인 루디 건릭(Rudi Gernreich)은 1964년 패션계의 화제를 일으킨 탑리스(topless) 수영복을 선보였다.
1964년부터는 비닐, 인조가죽, 금속, 유리 같은 신소재도 패션의 소재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살갗이 비치는 시스루 드레스(See through dress)가 유행했다.

아트(op art)와 스페이스 룩은 기하학적인 패턴과 더불어 블랙 & 화이트, 화이트 & 실버의 미래주의 패션을 가져왔다.
미국이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1966년에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은색 가죽과 쇠사슬 갑옷, 다양한 색깔로 물들인 가발, 플라스틱 등의 각종 인공 소재를 이용해 패션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오래 가지 못하고, 1968년에 이에 대한 반발로 로맨틱 룩(Romantic look)이 선보였다.
1967년에는 남녀의 구별이 모호한 유니섹스 패션이 입생로랑에 의해 정착되었다.
로빈 훗 가죽 재킷과 극서부 지방의 가죽 카우보이 바지, 터틀넥 풀오버는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의류가 되었다.
입생로랑은 남성 수트와 유사한 팬츠 수트를 발표하였는데, 속에 브라우스와 조끼를 입고 타이를 맨 모습을 볼 때 남녀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의 가장 큰 문화적 현상은 히피의 등장이었다.
미국의 지나친 물질 만능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반발한 반전사상을 내세운 젊은이들이 바로 히피였다.
이들이 입고 다니는 히피 룩(Hippie look)을 보면 낡고 해진 청바지 위에 수술이나 징과 같은 장식을 달고, 낡은 부분을 가리기 위해 패치워크나 자수 장식을 하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은 남녀 모두 긴 생머리나 웨이브진 긴머리를 늘어뜨렸고, 머리에 스카프를 매기도 했다.

시대에 와서야 한국의 패션 흐름에 대해 할 얘기가 생긴다.
4.19와 5.16을 거치는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명동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양장점에서는 외국의 유행이 천천히 소개되면서 세계 패션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신우의 오리지날리, 진태옥의 디쉐미는 대표적인 양장점들이었다.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차림의 귀국장면이 TV에 방영된 것은 대단한 이슈였고, 한국 여자들의 패션을 변화시키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션은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냉전의 시대를 맞은 세계에서 미국은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선두주자였다.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딘의 이미지가 세계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은 모두 미국인이었다.
제왕 디오르는 시즌마다 새로운 '라인'들을 발표해 패션 발전속도에 엄청난 가속도를 더했다.
19세기에는 모든 유럽인들의 머리를 맞대고 미적 감각을 끌어모아 수십년에 걸쳐 이룩하던 변화를 디오르는 혼자서 6개월마다 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패션발전에 어느 정도의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있다.
1951년에 Levi's사의 등장은 여자들의 바지착용을 더욱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튤립, 큐폴라, I, 트라페즈, A, H, 색, 배럴 라인



오르는 계속하여 1953년 춘하 컬렉션에 튤립(tulip)라인을 발표했는데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를 짧게 해 발랄함을 추구했다.
어깨는 둥그스름하고 가슴선을 크게 강조한 반면 웨이스트부터 아래는 가는 디자인이었다.
1953년 가을에 발표한 에펠탑 라인은 하이웨이스트에 포인트를 둔 이브닝드레스로 프린세스 라인이 아랫단으로 내려가면서 넓게 퍼지는 형태로 허리선에 절개선을 넣거나 허리선 아래에 주머니를 달아서 H자의 가로선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슷한 시기에 샤넬은 파리의 오뜨 꾸뛰르에 돌아와서 발표한 샤넬 수트의 인기는 시대를 관통한 클래식이 된다.
샤넬 수트는 저지나 트위드를 쓴 직선적인 실루엣에 칼라를 달지 않은 심플한 목둘레와 재킷 밑단을 브레이드로 라인 장식을 하고 속에 입는 블라우스와 재킷의 안감을 매치시켜 큰 반응을 일으켰다.
1954년 봄에 자크 파트는 에스라인을 발표했다.
뒤 중앙에 여유를 주어 웨이스트를 조이고 스커트는 체형을 따르게 한 실루엣으로 옆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형이 S자와 비슷했다.

1955년 봄에 디오르는 A라인을 발표했다.
작은 모자, 좁은 어깨, 약간 하이 웨이스트에 편평한 가슴, 주름스커트가 아래로 퍼져서 A자형 실루엣이 되는데 이러한 실루엣은 슈트, 원피스, 코트 등에 적용시킬 수 있었으므로 H라인보다 인기가 있었다.
같은해 가을에는 Y라인을 발표하였는데, 스커트의 폭이 좁아졌고 어깨부터 가슴까지 흐르는 듯한 실루엣으로 앞중심선과 칼라의 윤곽선에서 Y라인을 형성하는 스타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씬하나 때로는 수직형으로 옷을 강조할 때도 있다.
같은 해에 합성섬유가 등장하였다.
1956년 가을에 발표된 마그넷 라인은 U자형의 자석처럼 모자에서부터 어깨, 허리로 흘러내리는 선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는 실루엣으로 애로 라인이라고도 하였다.
1957년 가을 디오르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스핀들 라인은 방추형으로 옷 중앙을 부풀려 과장시키고 위아래는 좁게 한 모양이 특징이다.
1958년 봄에 디오르사의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트라페즈 라인(trapeze line)을 발표했다.
트라페즈는 프랑스어로 사다리꼴이라는 뜻으로 어깨에서 스커트까지의 벌어짐이 사다리꼴과 같은 형태의 실루엣이었다.
이것은 색(sack) 드레스의 일종으로 스커트는 여유가 있는 형태였다.
색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라인 시대는 끝났다.

American Graffiti, 1973

큰롤은 1950년대부터 전세계를 휩쓸면서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패션용어로는 1950년대 룩과 같이 통용되고 있는데 특히 50년대 미국의 영 패션을 지칭한다.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스타일로 포니테일(Pony Tail)의 헤어, 알로하 프린트의 스포츠 셔츠, 플레어 스커트, 삭스에 스트랩 펌프스를 조합한다.

국 동부 8개 명문 대학 건물이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있어 아이비 컬리지(Ivy College)라고 불리는데, 아이비 룩이란 아이비 컬리지 학생들이 입던 신사복이나 숙녀복을 일컫는 말이다.
교복 스타일에 많이 이용, 변형된 의미로 대학생들의 옷차림을 통틀어 아이비 룩이라고 한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션의 암흑기는 1차 대전에 비해 더 참혹하고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직물은 부족하고 국가적인 배급제와 법적인 디자인 제한조치 등으로 인해 의복은 고쳐입고 재생해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옷의 디자인은 축소되고 단순화되었다.
전쟁터에서 사라진 셀 수 없이 많은 남자 희생자들을 대신한 여자들의 사회참여도 폭발적으로 늘었고, 여성복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기능성이었다.
전쟁 중에는 기능복 형태의 밀리터리 룩이 유행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모자, 굽이 있는 구두, 각진 어깨, 무릎 길이의 짧은 스커트에 재킷과 코트에는 군복 형태의 디테일이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디자인은 있었다.
차분한 색채를 사용했고 값비싼 트리밍은 제외되었다.
여자들이 바지를 주로 입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드레스는 허리를 더욱 가늘게 조인 볼드룩이 등장했다.

쟁 기간동안 패션 디자이너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고 항구도시 뉴욕에 부띠끄를 열었다.
폭탄이 떨어지지 않던 미국은 전쟁기간 동안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패션 모델로 등장시키면서 신흥 디자이너들이 그 시대의 독창적인 패션 제공자로 인식되면서 아메리칸 룩(american look)을 창조했다.

계대전이 끝나자 여성복에는 급격한 실루엣의 변화와 혁신적인 유행이 나타났다.
1차대전 후에 샤넬이 있었다면 2차대전 후에는 디오르가 있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여성스러운 우아함를 강조한 뉴 룩(new look)을 소개하면서 패션계의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파리가 세계 패션의 메카임을 다시 증명했다.
드롭숄더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로 표현된 부르조아적인 스타일은 유니폼에 싫증난 여자들에게 기쁨과 흥분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뉴 룩은 또한 짧게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을 출현시켰고 넓은 테의 모자 또는 아예 테두리가 없는 우아한 모자들을 쓰게 되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공황이 세계를 덥친 1929년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실업,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확산은 낙천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여성 의복은 대공황을 계기로 직장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비활동적이고 우아한 여성적인 것이 중시되었다.
허리라인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스커트가 길어지면서 슬림해졌고, 매우 섬세하고 여성적이 되었다.
부드러운 니트와 레이스, 그리고 리본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인체를 부드럽게 드러내 보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출현하게 된다.
30년대 초에는 등을 드러내고 앞가슴을 가리는 홀터(halter) 네크라인의 이브닝드레스가 선보였는데 U자형이나 V자형으로 허리선까지 등이 노출되고 스커트는 플레어지게 한 디자인이었다.
어깨를 각지게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홀쭉하고 긴 롱 앤드 슬림(long and slin)의 여성적인 실루엣이 나타나면서 고어 스커트도 다시 유행했다.

킷과 코트는 날씬하게 신체에 맞았다.
코트는 발목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맥시라인이었고, 견장, 커다란 포켓, 커다란 라벨과 같이 군복에서 차용된 디테일이 특징을 이루었다.
물자 부족과 의복에 대한 각국의 법적 제재로 인해 30년대 말부터는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 슈트인 밀리터리룩이 실용적인 기능복으로 인정받아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남성적인 테일러 수트도 여성복으로 정착되었다.
스커트는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가 무릎까지 짧아졌고 매우 두꺼운 어깨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를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39년 쯤에는 실용성 덕분에 스웨터도 널리 보급되었다.

국에서는 라텍스와 슬라이드 패스너(slide fastener, zipper)가 발명되었다.
지퍼는 훅(hook & eye)이나 단추 대신 여밈에 사용하게 되었다.
신축성 좋은 라텍스 천과 지퍼를 이용하여 가장 편안한 실크 코르셋이 제작되었고, 여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체형에 맞는 편안한 실크 코르셋을 입게 되었다.

동적인 스포츠의 인기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복이 디자인되기 시작하였으며, 1936년부터 휴가가 제정되어 신축성있는 직물로 만들어진 원피스 수영복이 착용되기 시작했고 30년대 중반 동안 투피스 수영복이 만들어지기 기작했다.  
테니스와 스케이트복은 과거보다 더 짧아졌고 플리츠나 플레어를 넣었다. 골프용 스커트는 특별히 깊은 플리츠를 넣었고 많은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자들은 턱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에 작은 장식용 모자나 머리에 꼭 맞는 캡을 썼다.
구두의 모양도 다양해지기 시작해서 하이힐, 웨지힐, 두꺼운 밑창이 출현했지만, 바쁜 일상생활에 적합하고 실용적인 낮은 굽의 스타일이 인기였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였고 패션 산업의 전성기였다.
시대 전반에 걸쳐 페미닌 스타일과 모던 스타일이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문화적 영향으로 세계의 모든 다운타운에서는 영화, 재즈음악, 자동차가 넘쳐 흘렀다.
사람들은 영화 속 스타들에게 열광하고 그 스타일을 연구하고 모방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가사 노동을 단축하는 도구들과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여자들은 집을 떠나 사회에 참여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고,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Marie Stopes가 피임법을 전파하면서 여성해방의 물결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Flapper girls

자들의 패션은 직선형 실루엣의 기능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로 표현되었고 당시의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와 모더니즘이 복식에 반영되었다.
직선의 짧은 머리, 어깨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납작한 가슴의 짧은 드레스, 힙까지 낮아진 웨이스트를 특징으로하고 여성의 신체 곡선은 무시하는 실루엣의 보이시 스타일(boyish style)이 나타났다.
1926년에는 기본적인 실루엣을 그대로이면서 여성적인 분위기를 더한 갸르손느 스타일(garconne style)이 등장했다.
이런 당시의 톱 모드를 입는 여성들을 플래퍼(flapper, 말괄량이)라고 불렀다.
플래퍼들은 복식과 행동에서 관습을  깨뜰기고 유행에 관심을 기울여 빨간 립스틱, 보브헤어, 슬리브리스 드레스를 즐겼다.

in 1926

복의 실용성과 활동성도 중요시되면서 옷의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스커트가 짧아진 것은 패션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였다.
16세기부터 이어온 가슴, 어깨, 허리에 대한 관심이 다리로 옮겨지면서 스타킹, 벨트, 구두에 더욱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이다.
전통적인 검정 스타킹 대신 장식적인 요소가 더해진 베이지, 갈색, 다양한 색깔의 실크스타킹이 유행했고, 신발은 우아한 펌프스에서 높은 굽의 스트랩 슈즈, 편안한 플랫 슈즈에 이르기까지 앞코가 무척 뾰족했다.
모자는 눈썹을 가리도록 푹 눌러쓴 끌로셰 모자(cloche hat)가 유행했다
스커트의 길이는 1927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땅바닥에서 30~40cm가 되도록 짧아졌다가 이후로 다시 길어졌다.

시대에 유행하던 블라우스와 스커트의 콤비네이션은 없어지고, 힙에 약간의 여유를 준 데이타임 드레스(daytime dress)의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여성의 자유를 반영하고 새 시대의 기계적인 형을 선호하는 표시라고 할 수 있으며, 주로 라운드나 스퀘어 네크 라인인 드레스의 위나 허리부분은 기모노 패션을 잘라 드레스로 만든 모양이었고, 바디 부분은 스트레이트로 떨어지는 모양이었으나 접혀져서 주름이 지기도 했다.
허리선의 경우는 1925년 가장 많이 내려갔다.
이브닝 드레스는 단순한 실루엣이었지만 장식적인 레이스, 쉬폰, 실크로 꾸며졌고 인조보석으로 한층 더 화려한 표면장식을 했다.



성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상류사회 여성들이 긴 털목도리와 양단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파고 들었다.
자신이 즐겨 입던 미디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스트레이트 스커트로 구성된 실용적인 옷을 내놓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20년에는 유명한 샤넬룩을 완성시킨다.

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여자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당시의 레저와 스포츠는 부유함을 상징했다.
스포츠에서도 종목별 목적에 맞는 기능성 의복이 세분화되어서 등장하고, 마침내는 스포츠룩을 발전시켰다.
1920년대 초 가브리엘 샤넬이 여행지에서 그을린 피부로 돌아온 모습이 공개된 이후로는 선탠을 한 그일린 피부가 유행했고, 패션모델과 마네킹의 피부도 구리빛으로 바뀌게 되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기모노 드레스와 호블스커트

자이너 폴 포와레(Paul Poiret)는 그의 전성기인 1910년부터 1914년까지 패션계를 지배했다.
이시기는 유럽 여러 나라들과 중국, 일본과의 교역,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 등으로 유럽의 여자 복식에 동양적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포와레는 패션에 동양적인 강한 원색과 과잉장식, 이국적 패턴과 벨벳과 같은 낯선 소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했다.
'코르셋에서 해방된 대신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는 말처럼 발목으로 갈수록 스커트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호블스커트도 그의 디자인이었다.

선적이고 추상적인 아르누보로부터 기계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패션은 새로운 문화운동인 아르데코(Art-Deco)의 영향권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패션에서 큰 변화는 1900년대 초반 상류층에 널리 퍼져 있었던 S-실루엣이 사라지고 허리 라인이 점점 내려와 로우 웨이스트(low waist)의 직선형 실루엣이 유행한 것이었다.
여성스러움보다는 단순함을 강조한 자유롭고 개성적인 디자인은 현대복의 성격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상의가 남자 상의와 거의 같은 형으로 변해 더블 칼라의 재킷과 롱 스커트의 테일러드 수트가 유행했다.
하지만, 모자와 머리장식에서는 복식과 반대로 여전히 풍성한 장식과 화려하고 커다란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1914년 7월 28일 이후로 패션계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여성복은 본격적인 현대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치마길이는 짧아지고 실질적이면서 기능적으로 변했다.
색채는 밝고 채도가 높은 색채에서 대채로 가라앉은 색조인 회색, 베이지색, 크림색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여자 복식에서 실용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대전을 거치는 4년 동안 630만이 넘는 젊은 남자들의 희생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직업활동, 정치적 참여가 크게 늘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The Young Ladies Journal 1905

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Belle epoque)로 불리웠던 1890년대의 여성 패션은 소재에서도 디자인에서도 매우 사치스러웠고 호화스러웠다.
20세기가 열리면서 제기된 복장 개혁은 신예술운동인 아르누보(Art Nouveau)의 영감에 의해 단순화된 디자인, 생동감 있는 색채, 새로운 장식 방법을 등장시켰다.
1890년에서 1910년에 이르기까지 복식은 점점 단순해져 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1900년대의 여성 복식은 여전히 장식적이고 탐미적이었다.

1900년대 초반, 드레스와 스커트 밑에서 골반을 최대한 과장해주던 버슬(Bustle)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스커트는 여자들에게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몸매 굴곡을 강조하기 위해 주름을 잡은 플레어 스커트(flare skirt)를 입었고 허리부터 허벅지까지를 타이트하게 보이기 위해 고어스커트(gore skirt)를 입었다.
코르셋은 더욱 보강되어 허리를 가늘게 조였으며, 강조된 힙에 상대적으로 가슴은 앞으로 내밀게 되므로 옆에서 본 모양이 S자 형태를 이루게 되는 S커브 스타일(S-curve style)이 유행하게 되었다.
소매는 어깨쪽을 크게 부풀리고 손목은 꼭 맞는 레그오브머튼 소매나 퍼프소매가 인기있었다.
앞가슴에 장식을 늘어뜨린 블라우스, 풍성한 웨이브의 헤어스타일과 엄청난 장식의 모자도 인기를 끌었다.
이 무렵 만화주인공 '깁슨 걸'은 자신감 넘치는 젊은 여성을 대변하면서 신여성의 상징으로 생각되었고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받아들여 졌다.
깁슨 걸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스포츠에 열광했고, 이 시기의 스포츠는 이성을 만나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자, 장갑, 핸드백은 여자들에게 필수적인 외출용 장신구였다.
여기에 더불어 여름에는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겨울에는 머프를 착용했다.
고도로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깃털 목도리, 부채 등은 이브닝 드레스를 완벽하게 하는 장신구였다.
남자들은 포켓 행커치프와 장갑, 지팡이를 애용했고 값비싸고 번짝거리는 타이 핀, 셔츠 버튼, 커프스 링크스를 과시했다.
손목시계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시절, 차마시는 시간인 오후 5시는 여자들이 코르셋의 압박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위해 걸치는 티가운(tea-gown)은 여자들에게 필수적인 이지웨어 아이템이었다.
1908년 폴 포와레가 등장해 하이웨이스트와 수직으로 떨어지는 실루엣의 엠파이어 토닉 스타일(Empire tonic style)을 대유행시키고 나서야 여자들은 코르셋의 구속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유행이란?

자라면

ⓒArtComments

유행, 트렌드라는 말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스타일의 변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변화시켜 놓고 트렌드가 된다.
이런 갑작스런 변화에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유행을 주도하는지 궁금해 한다.
유행은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하고픈 욕구로부터 생겨나고, 패션리더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패션업계의 종사자 또는 광고업자에 의해 시작되거나 확산된다.
예들 들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스타일이 패션 테마가 된 것은 패션 잡지의 편집장들에 의해서였다.
반면에 오드리 헵번이나 마돈나의 스타일은 홀로 트렌드를 창조한 패션리더였다.
또한,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모두 패션을 응용 미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에 뛰어난 패션은 당시에 유행하는 순수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히 말하는 '유행'은 좀 광범위한 의미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용어를 각각의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 구분해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모드(Mode) - 예술적인 창작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단계다.
2. 패션(Fashion, Vogeu) - 지금 현재 널리 전파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는 복식의 유형.
3. 스타일(style) - 패션이 대중 속에 침투되어 일정 기간 이상 머물면서 정착된 복식의 유형
4. 클래식(Classic) - 지속적이고 시기를 초월한 스타일로서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선호되어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복식.
5. 패드(Fad) -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 선호되었다가 빨리 사라져버리는 주기가 매우 짧은 유행.

군가가 유행을 어느 시기에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패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적응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의 스타일에 관심있는, 돋보이고 싶은 여자라면 누구나 유행이 시작되는 도입단계에서 미리 알고싶어 할 것이다.
다행히도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고,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신호를 보낸다.
예를 들면 혁신적인 스타일이 둘 이상 동시에 패션마켓에 등장했다든지, 기존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극과 극에 해당하는 스타일이 나타났다든지 하는 것들은 종종 새로운 트렌드 등장에 대한 신호가 된다.

나간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가올 유행이 보내는 신호를 좀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의 유행의 변화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위의 그림을 보면, 트렌드의 변화는 종종 지금과 정반대의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음 글부터는 20세기의 각 시기별로 어떤 트렌드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아래는 이 글과 시리즈를 이루는 '20세기 스타일'에 관한 글들입니다.

▷ 유행이란
▷ 1900년대의 유행 - 개혁시대, 아르누보
▷ 1910년대의 유행 - 포와레, 아르데코
▷ 1920년대의 유행 - 갸르손느, 플래퍼, 스포츠
▷ 1930년대의 유행 - 롱&슬림
▷ 1940년대의 유행 - 밀리터리 룩, 뉴 룩
▷ 1950년대의 유행 - 라인의 시대
▷ 1960년대의 유행 - 영 패션
▷ 1970년대의 유행 - 펑크, 로맨틱, 개성의 시대
▷ 1980년대의 유행 - 믹스 & 매치
▷ 1990년대의 유행 - 개인화, 세계화


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비키니 이야기

마 시대, 여자들은 배꼽이 드러나는 모직 투피스를 입고 운동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기에 과감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후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록 여성들의 수영복은 온 몸을 가리는 스타일이었지.

수영복?


심지어 18세기에는 여자의 수영복은 사회악으로 생각되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가, 19세기 들어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법으로 수영을 권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무렵의 수영복은 헐렁한 나이트가운처럼 생겼다고 해.
이런 수영복의 문제점은 물에 젖었을 때 너무 무거웠다는 거야.
심지어는 수영하는 사람의 몸무게와 비슷할 정도로 무거워지기도 했고, 이것 때문에 영국과 미국에서는 수영 도중에 익사 사고도 많았다.
따라서 수영복은 짧고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1930년대가 되어서는 팔과 다리를 제법 많이 보여주고 있었지.

1940년대가 되어서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변에 나온 여성들은 전과 달리 자기 몸을 대담하게 태양에 노출시키기 시작했어.
여기서 힌트를 얻어 1946년에 프랑스의 디자이너 자끄 앵(Jacques Heim)과 루이 레아(Louis Reard)가 거의 걸치나마나한 투피스 수영복을 디자인해 자기들의 상점에 내놓았다.
그 윗부분은 조그만 브래지어였고, 아랫부분은 2장의 조그만 삼각형 헝겁을 고리로 연결해 만들었지.
자끄 앵은 자기의 수영복을 '아톰(원자)'이라 이름붙였고, 비행사를 고용해 하늘에 이런 글씨를 휘날리며 선전했다.
"아톰-세계에서 제일 작은 수영복"

Bikini in 1946

연히도 1946년 7월 1일에 미국은 원자폭탄 실험을 하고 있었다.
장소는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작은 섬인 '비키니 환초'였지.
7월 25일로 발표된 제 2차 실험에 앞서서 이 초고성능 폭탄이 지구를 날려 버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리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종말론자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파티가 유행했는데 이 파티를 '비키니 파티'라고 불렀어.
자끄 앵이 만든 수영복 하나에도 '비키니'라는 별명이 붙었고, 앵은 잽싸게 비행사의 홍보 문구를 이렇게 바꿨다.
"비키니-세계에서 제일 작은 수영복보다 더 작은 수영복"
그 이름은 그대로 굳어졌고, 비키니의 인기는 여러모로 대단했지.

Reard는 원폭 실험 4일 뒤인 7월 5일에 당시 최고 모델이었던 Micheline Bernardini에게 세계 최초의 비키니 수영복을 입혀 런웨이에서 캣워킹을 시켰다.
미군 장병들은 아내와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유럽에서 비키니를 사왔지만, 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던 미국 여자들은 바닷가에서 쫓겨났다.
청교도적이었던 미국은 1960년대초에 와서야 카리브 해변의 휴양지를 통해 비키니를 받아들였거든.

실 비키니보다 더 충격을 줬던 수영복은 좀 더 빨리 등장했다.
1910년에 에니트 켈러먼이 내놓은 목에서 발목까지 타이트하게 붙는 편물 수영복이 그거야.
건강을 위해 수영을 시작한 이 여자는 당시에 입던 두꺼운 세일러복 비슷한 수영복 대신에 자기만의 수영복을 입었고, 온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과감한 노출을 숨죽이고 지켜봤지.
그 수영복은 오랫동안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21세기 들어 수영선수들의 전신 수영복으로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는 거야.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Nonos Style in 21st. century


"보보스의 잔치는 끝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프랑스의 시사잡지 '르푸엥'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쓴 말이야.

지난 10년 넘게 세계 젊은 세대의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었던 보보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거야.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은 노노스(Nonos)족이라고 해.

노스란 말을 처음 사용한 곳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패션정보회사 넬리로디라고 한다.
NONOS란 단어를 풀어보면 No Logo, No Brand의 줄임말이라고 해.
로고를 없애고 브랜드는 숨긴다는 거야.
겉으로 드러난 브랜드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실을 중시하겠다는 거지.
이런 가치관이 라이프 스타일에 투영되어 자신만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노노스 족이다.

국에서는 노노스족이 약간 왜곡된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20세기엔 자신이 명품족임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의 로고와 문양이 큼지막하게 드러난 제품을 선호했지.
그러나 최근 들어 '짝퉁'이 대유행하면서 명품의 희소성이 떨어지니까 오히려 브랜드를 숨긴 명품을 선호하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초명품족을 노노스족이라고 부른다는 거야.
굳이 로고를 내붙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그 디자인과 스타일을 알아본다는 거다.
실제로 압구정의 갤러리아 백화점에서는 몇년 전 가을부터 노노스 브랜드가 로고 노출이 심한 브랜드의 매출 신장율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고 해.
역시나... 참으로 뛰어난 상술이야...


션업계는 당연히 이런 트렌드를 발빠르게 따르고 있다.
Louis Vuitton은 고유의 LV 로고를 없앤 신상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고, Burberry도 특유의 브리티시 체크 대신 새로운 플라워 패턴의 신상품을 내놓았으며, Fendi는 트레이드 마크인 F로고를 없앤 베니티 백을 출시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고유의 로고나 문양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던 명품 업체들이 이렇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숨기기 시작하는 이유는?
노노스족의 파워가 점점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이지.
명품 업체들은 지금까지 일관된 색채와 디자인, 로고를 고수하면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미지로 마케팅을 해왔다.
그런데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니까 그 욕구를 만족시키기 역부족인 상황이 된거다..
게다가 시즌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과 소재, 실용성을 내세우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전략에 한계가 온 걸 느낀거지.

20세기의 명품족이 완전히 멸종된 건 아니지.
명품족이 진화해 극단적(Extreme)이고 과장(Exaggerate)된 걸 추구하는 익세스(X's)족도 생겼다.
말 그대로 과장된 장식, 화려한 색상, 평범하지 못한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물건의 의미나 가치보다는 다소 허영스러운 장식적 욕구에 충실한 계층이다.
익세스족의 대표 아이콘으로는 데이비드 베컴과 그 부인 빅토리아 베컴이 꼽히고 있어.
얘네들은 세상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점점 더 파격적인 스타일과 야단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장식을 지향하면서 엄청단 돈을 거기 퍼붓고 있어.
아들을 위해 수천만원짜리 유모차를 구입하는 극성까지 보이면서 말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세계의 관심은 얘네들한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단 말이지.
되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조니 뎁과 바네사 파라디 커플 같은 쪽이다.

얘네는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입은 턱시도의 브랜드를 묻는 기자 질문에 "동네 양복점"이라고 대답하는 노노스 스타일이거든.

본의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 MUJI)'을 아는지?
무인양품은 말 그대로 브랜드가 없고 품질은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상품을 보면 라벨이나 가격표는 붙어있는데 아무런 로고도 브랜드도 없어.
그 뒤에는 실제로 다나카 잇코, 요지 야마모토, 후쿠자와 나오토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있는데도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이름값은 철저히 배체하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참 답답한 건, 한국에서는 MUJI 자체를 브랜드화하고 있다는 거ㅈ.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디자이너 서상영의 숍에는 간판도 없고 그냥 '비어있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견출지 한 장이 붙어 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디자이너는 옷을 만들 뿐이고 옷은 그것을 입는 사람에 의해 다시 디자인된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옷에 브랜드를 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거지.

대를 앞서가는 정신에는 항상 올바른 의미가 있기 마련이야.
보보스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부유하지만 진보적이면서 사치스럽지 않고, 환경과 예술을 사랑하는 정신을 말했었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냥 값비싼 아파트나 사들이고 유기농 식품을 먹으면서 입으로만 지구온난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노노스도 실용성과 본질적인 가치, 그리고 자기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정신이 그 핵심이야.
뜻도 모르고 유행만 좇는 사람들 때문에 그 본질이 왜곡되는 일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