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손수건 이야기

수건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코를 푸는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아.
이 네모난 헝겊 조각은 여러 시대를 통해 사회적 부침을 겪었고 많은 용도로 쓰였거든.
기원전 2세기 쯤에 로마에서는 뷰유한 사람들만이 흰 아마포로 만든 '수다리움'을 가질 수 있었어.
수다리움(sudarium)은 땀을 의미하는 낱말 'sudor'에서 나왔고, 이 헝겊은  주로 이마의 땀을 닦는 데 사용되었지.

기 로마시대에는 손수건을 흔드는 것이 패배한 검투사를 살려둘 것인지 검으로 죽이게 할 것인지에 관해 투표를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또 손수건은 지위가 높은 인물에게 인사하거나 극장에서 배우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데도 사용되었어.
외국에서 아마가 수입되며서 이 헝겊들을 더 싸게 만들수 있었고, 그 결과 보통 로마인들도 그것을 살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기독교 교회의 위세가 높아짐에 따라 손수건은 신분의 상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손수건은 성직자 복장에 필요한 일부분이 되었다고 해.

세에는 수다리아와 함께 '오라리아'를 교회와 대관식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해.
오라리아(oraria)는 입을 뜻하는 라틴어 os에서 나왔고 입을 닦거나 가리는 용도였음이 분명한 것 같아.
어떤 사제들은 손수건의 사용법에 대해 혼란에 빠지기도 했어.
왜냐하면 교회 당국은 사제가 사제복에 코를 풀어서는 안된다고 특별히 경고했기 때문이지.
손수건은 사제의 복장 중 일부분이었거든.

네상스 시대에도 손수건은 부유한 사람들의 패션의 한 항목이었어.
청결은 단지 하나의 핑계에 불과했지.
청결에 대한 동기 이상으로 손수건은 손에 들고 다니면서 자랑할 수 있도록 아름다와야만 했던 거야.
귀부인들은 자기들의 아름다운 손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우아하게 손수건을 치켜든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16세기에 무렵에는 청결은 프랑스 궁정이나 사교상에서 의무적으로 지켜야만 할 사항은 아니었던 가봐.
그래서 귀부인들은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에 적신 작은 헝겊조각을 가지고 다녔지.
당시의 왕인 앙리 3세는 손수건을 좋아했으나, 그의 남성 신하들은 손가락으로 코를 풀었다는군.

수건은 오랫동안 사랑 및 구애와 관련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야.
17세기에 영국의 숙녀들은 단추로 장식한 손수건을 구혼자에게 주었다고 해.
찰스 2세가 비싸고 무익한 단추의 수입을 금지하자 단추 밀수가 성행했다는 걸 보면 꽤나 유행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손수건을 널리 퍼뜨린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코담배였어.
코담배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담배진이 옷에 묻는 것을 막으려고 손수건을 사용했지.
그 때부터 장식적인 가치를 잃은 손수건은 호주머니에 구겨 넣어졌고 오늘날가지 거기에 계속 머물고 있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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