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스타킹 이야기

ⓒ Markusram

리자베스 여왕이 1560년에 받은 새해 선물 가운데 하나는 비단으로 짠 검은 스타킹이었다고 해.
그 시대의 역사가 존 스토의 기록에 따르면, 그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여왕은 천으로 만든 양말을 더 이상 신지 않았다는군.
여왕은 바닥까지 끌리는 다운을 입었기 때문에 총애를 받던(?) 몇몇을 빼고는 여왕의 양말이 바귄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지.
재위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무서운 할머니였던 메리 여왕이 영국깃발인 유니온 잭의 다채로운 색깔로 띠를 그려 넣은 스타킹을 종종 신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훨씬 더 적었지.

래는 색깔과 무늬가 있고 길면서 다리에 꽉 끼는 양말은 남자들만 신는 것이었어.
특히 성직자와 군인들이 신는 복식 중에 하나였고, 젊은 남자들의 인기있는 패션아이템이었지.
여자들은 훨신 평범한 모양의 양말을 신었지.
14세기가 되면서 남자용 스타킹(타이츠)이 허벅지와 엉덩이의 윤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은 외설적인 옷이라고 비난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사형을 당할 때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스타킹을 신었는데 발목에 수수한 은장식이 달린 푸른 스타킹이었다고 한다.
1700년대에 이르러서는 발목이 치마의 재봉선 아래로 살짝 나오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에 귀부인들 사이에선 수를 놓은 디자인의 스타킹이 유행했어.
이 자수는 스타킹의 옆쪽 박음질 솔기를 감추기 위한 장식이었어.
이 자수장식의 디자인은 아직도 남자들의 양말 옆면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지.

ⓒ Melissa Maples

달라붙는 투명한 직물이 나와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유행했던 프랑스의 집정시대(1795~1799)에는 살색 스타킹이 큰 인기를 끌었다.
실크로만 만든 스타킹은 1920년대에 와서야 유행했어.
그러나 실크스타킹의 가격은 너무 비쌌기 대문에 제조업자들은 실크를 대신할만한 것을 찾아 헤매었다.
이 제조업자들에게 1938년 10월 27일은 경축일이 되었다.
'듀퐁'이라는 화학회사가 '화학적으로 합성한 새로운 실크'라고 표현한 인조 섬유의 특허를 받은 사실을 신문에 공표한 날이거든.
바로 나일론이었지.
이 기적의 섬유로 만든 스타킹이 델라웨어주의 월밍턴에서 1년 뒤에 시험판매에 들어갔을 때, 상점들은 그 지방에서 들어오는 주문만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조사를 나온 업자들이 고객들의 반응을 쉽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지.
놀랍게도 그들은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에서 온 여자들이 스타킹을 살 자격을 얻으려고 호텔과 아파트에 세를 얻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어

일론은 정말 싸고 훌륭했지만 모든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새로운 양말이 강철처럼 튼튼하다고 어떤 신문이 대서특필했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는 못했거든.
팬티스타킹 한 장은 굵기가 머리카락의 반 정도인 실 6.4km를 300만 개의 고리로 짜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고리들 중의 몇 개가 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지.
이 당시의 스타킹 제조업자들은 정말 괴로왔을 거야.
비양심적인 장사꾼으로 매도당하고 있었거든.
그 이유는 스타킹이 너무 질기면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올 풀리지 않는 스타킹을 만드는 비법을 업자들이 튼튼한 금고에 넣고 잠가 버렸다는 소문이 시중에 자꾸 나돌았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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