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실 이야기

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세 여신은 인간의 운명의 실을 관장한다.
클로토(Clotho)는 인간의 탄생을 지배해 생명의 실을 자아내고, 라케시스(Lachesis)는 그 생명의 실의 길이를 재고, 아트로포스(Atropos)는 죽음의 순간에 큰 가위로 그 실을 끊어버린다.
물레가 인도에서 유럽에 전래된 중세 후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고대 이집트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실을 만들었다.
솜, 양털, 아마 등의 섬유 뭉치를 그림 속의 clotho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디스태프(distaff)라는 실감개 막대에 걸고 그 섬유를 한 올씩 뽑고 꼬아서 실을 만들어 감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영어로 distaff side라고 하면 '여자의 일' 또는 '모계(母系)'를 말한다.
또 옛날에는 실을 잣는 일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여자들이 노처녀가 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spinster(실잣는 여인)은 곧 노처녀라는 의미로 통하게 되었다.

1800
년대 초에는 스코틀랜드 서남부의 도시 페이즐리에서 생산된 견사와 아마사가 느슨한 타래실로 팔렸다.
그 후 실패에 감긴 실이 나오면서 실값이 좀 비싸졌는데, 실을 다 쓰고 빈 실패를 가져오면 그 값을 되돌려 주었다.
당시만 해도 솜은 실로 만들기에 그다지 좋지 않은 하급 섬유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영국에 대한 명주실 공급을 중단하자 스코틀랜드의 방직공장에선 면사로 최초의 꼬임사를 개발해 명주실만큼 튼튼한 실을 만들게 되었다.
그 무렵의 영국 소년 존 머서는 런던의 한 직물 영업소에 화학자로 일하고 있었다.
여기서 몇 년 동안 고약한 냄새와 자욱한 증기 속에 파묻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머서의 주된 관심사는 특정한 화학약품이 식물섬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고, 그런 연구 결과 면제품의 머서가공법(mercerization)을 개발했다.

ⓒ George E. Norkus

면을 팽팽하게 당긴 상태로 가성소다 용액에 넣어 처리하면 면이 더 두꺼워지고 질겨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실이나 직물에 모두 써먹을 수 있는 이 가공법은 면을 반투명상태로 만들어 그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염색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머서법으로 가공된 모든 면사의 실패에는 빠짐없이 mercerized(머서법으로 가공했음)라고 새기게 되었다.

세상에는 어떤 실보다도 더 오래되고, 보이지 않을만큼 가늘고, 강철처럼 튼튼한 불가사의한 실이 하나 있다.
바로 거미줄인데 이 실을 만드는 비법은 아직은 거미들 끼리만 알고 있다.
사람들이 이 기적의 실을 이용해보련느 시도는 수없이 많았지만 아직은 누구도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어느 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의 거미줄 실 1미터를 만들려면 거미 450마리가 있어야 한단다.

화학과 섬유공학의 발달 덕분에 요즘은 놀랄만큼 다양한 종류의 실이 생산되고 있다.
그 중에는 상처가 아물 때 쯤에는 녹아서 흡수되는 수술용 봉합사도 있고, 완성된 옷을 세탁하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시침용 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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