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장갑 이야기

즘에야

ⓒ mebrett

장갑이 단순한 패션 잡화 용품이지만, 서양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장갑이 사랑의 맹세, 굳건한 우정을 상징하기도 했고, 증오, 저항, 충성심, 명예를 상징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또한 장갑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나 봐요.
그런 예를 보여주는 최초의 인물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일 거에요.
그는 페르시아인들의 나약함을 조롱하기 위해 이런 글을 썼다는군요.
"페르시아 놈들은 머리와 몸통, 발을 천으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털로 만든 덮개로 손과 손가락까지도 감싸고 다닌다."
기독교 초기의 도덕학자였던 무소니우스도 '건강한 사람이 부드러운 털로 손을 감싸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며 장갑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A.D. 960년 쯤에는 장갑이 성직자들의 의식용 복장의 일부가 되었지요.

실로 수놓고 보석으로 장식한 장갑은 옛날에는 왕들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변장을 했었지만, 값비싼 장갑만은 벗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갑을 손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왕의 장갑이 왕이 베푸는 보호 또는 호의 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독일에서는 장날이면 국왕의 장갑을 전시하면서 강도와 좀도둑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군요.
아마도 리처드 왕의 장갑처럼 비싼 장갑은 아니었겠지요.
1820년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국왕의 대관식을 거행할 때 장갑을 내던지는 절차가 있었다고 해요.
국왕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자는 누구든지 앞으로 나서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하네요.

자들은 11세기 이전까지는 장갑을 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장갑을 끼기 시작하면서 장갑은 곧 특별한 호의의 상징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지요.
기사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는 귀부인의 장갑을 몸에 지녔다지요.
이름은 전해지고 있지 않은 어느 기사는 카스틸랴왕의 궁전에서 자기가 사모하는 귀부인의 장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 여인네가 기사의 눈 앞에서 우아한 몸짓으로 사자가 우글거리는 구덩이 안에 장갑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에요.
기사도에 따라 이 기사는 주저없이 함정에 뛰어들어 장갑을 꺼내왔지요.
브라우닝의 시에 의하면 그는 장갑을 귀부인의 얼굴 앞에 번쩍 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16세기

ⓒ Catrijin

유럽에서는 흑사병을 예방하는 데에 향수를 뿌린 장갑을 끼면큰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 장갑들이 실제로 전염병의 대유행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당시 유럽인들의 극도로 불결했던 사정은 지난번 '속옷 이야기'에서도 한 적이 있으니까...
전염병을 막는 데 약간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밤이면 손을 하얗고 부드럽게 보이는 장갑을 끼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그 목적에 가장 맞는 장갑 재료는 바로 병아리 가죽이었다고 하는군요.
과연 장갑 한켤레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병아리가 몇 마리나 희생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들을 보면 포즈를 잡은 인물들이 장갑을 그냥 손에 들고 있거나 한쪽만 끼고 나머지 한 쪽은 들고 있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행이었거나 아니면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더 간단한 해석에 의하면 당시에 만들어진 장갑들은 그다지 손에 잘 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것이라고 알려진 장갑을 보면 엄지손가락을 넣는 부분의 길이가 12cm나 되거든요.

민들의 경우에는 19세기가 되어서도 한동안은 손에 천조각이나 가죽을 칭칭 감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장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장갑 업계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그자비에 주뱅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주뱅은 프랑스 장갑 생산의 중심지였던 그르노블 출신이었는데 손의 형태에 대해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 연구 결과 1834년에 한꺼번에 장갑 6켤레를 한꺼번에 재단할 수 있는 금속 형틀을 발명해 냈습니다.
그 때부터 장갑은 대량생산될 수 있었고, 표준 사이즈 또한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댓글 8개:

  1. 쭉 보다가.. 다른거 다 제쳐두고 팔 워머가 갖고싶네요.

    지금 너무 손시려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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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징가 z의 발사되는 손장갑이 생각나네요.

    장갑속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있다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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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R - 2009/11/26 10:30
    암워머, 정말 이쁘고 실용적이라고 저도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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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낙천적실천가 - 2009/11/29 14:55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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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장갑에 관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니...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월요일 시작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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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Zero0 - 2009/11/30 14:52
    감사합니다. 제겐 바쁜 한 주의 시작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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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 쇠장갑을 끼고 한번 펀치하면 옥수수들이 우수수 떨어지겠는데요...^^

    정성스럽고 흥미로운 글 잘 보았습니다. 내일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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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미날 - 2009/11/30 22:09
    ㅎ~ 좋은 날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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