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명품이 뭐지?


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명품'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참 많이 쓰이고 있잖아.
한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는 알듯말듯 두루뭉술한 풀이를 해놨더라.
영어로는 대충 'Luxury goods' 정도로 풀어쓰는 것 같은데, 정작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치품' 으로 나오거든.
사람들이 보통 머리 속에 떠올리는 '명품'의 이미지와 '사치품'은 좀 거리가 있어보여.
어디서는 '명품'이란 단어가 원래 영어에 약한 일본사람들로부터 여과없이 수입된 단어라고도 해.
다른 누군가는 소위 명품업체들의 아시아지역 판매전략으로 선정한 단어라고도 한다.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아.
왜냐면, 우리가 뭉뚱그려서 명품이라 부르는 서양상표의 패션 상품들엔 엄연히 등급이 따로 있거든.

이 패션(high fashion) 또는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는 매우 품질 높은 맞춤복 또는 개인별 정확
한 치수를 가지고 만든 패션 아이템들을 의미한다.
수제품이 많고, 유럽 버전의 최고급 '의상실' 패션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런 등급은 주로 프랑스에서 이름난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객들을 위해 제작하면서 시작되었고, 보통 10,000달러를 웃도는 가격대의 극소수를 위한 마켓이다.
유럽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하우스에서 디자인된 과감하거나 극단적인,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이 특징이지.
이런 아이템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가장 먼저 시도해 보며, 경제력이 매우 높은 극소수의 패션 리더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따로 광고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어.
반면, 유러피안 디자이너들은 쁘레따 뽀르떼(pret-a-porter)라고 불리는 기성복 라인도 생산하고 있어.
이 라인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실용적이고 캐주얼 스타일을 선호하는 미국시장에는 영향력이 크다.

국 패션 마켓에는 원래 개념의 오뜨 꾸뛰르는 없다.
하지만 이 용어를 디자이너 컬렉션 또는 디자이너의 기성복 라인을 가리킬 때 써먹지.
이런 아이템들은 변형을 거쳐 낮은 가격으로 대량 생산되어 판매된다.
미국의 디자이너 패션과 대중 유행 패션을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왜냐하면 Donna Karan, Bill Bless, Calvin Klein, Ralph Lauren, Anna Sui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은 일년에 두 번씩 패션쇼를 전개하는 동시에, 가격이 낮은 라인을 생산하고, 대량생산 마켓에 브랜드명을 라이센스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입고 워킹을 하면서 소개하는 상품들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직접 디자인한 작품이지만, 라이센스를 주어 생산한 상품 라인들은 그 밑에서 월급을 받는 보조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것이란 말이지.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은 당연하게도 제3세계, 개발도상국가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빌어 생산되고 있어.

근의 패션 시장의 트랜드는 미국 디자이너들이 유럽의 디자인 하우스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며, 이런 현상으로 미국과 유럽 디자이너에 대한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해.
원래 이름난 디자이너들의 작품 발표회장 이었던 패션쇼 런웨이 개념도 더 이상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의 전유물이 아니야.
상업성과 대중성이 강해지면서 점점 그 의미가 변해가고 있는 거지.
2000년대 초, 미국 디자이너  Geoffrey Beene은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라인을 평범한 런웨이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방식을 통해 새 디자인들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자이너들은 그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명을 가지고 가격대가 낮은 상품 라인인 브리지 라인(Bridge lines)을 전개한다.
이 라인들은 그들의 상위 브랜드 디자인을 변형해 가격이 낮은 소재로 생산하고, 다른 나라의 제조업체들에게 브랜드명을 라이센스주어 개발도상국가에서 대량생산한다.
예를 들어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와 A/X 아르마니가 있다.
제왕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직접 디자인해 생산하는 최고급 라인 브랜드는 "Milano Borgonuove 21"이야.
CK, Polo, DKNY 등도 마찬가지의 브리지 라인 상품들이지.
엘렌 트레시(Ellen Tracyy), 타하리(Tahari), 데이나 부크맨(Dana Buchman)등과 같이 명성이 높지 않은 디자이너들은 브리지 라인만을 전개하는데, 상대적으로 품질이 높은 상품들이다.

가상품(Better goods)라인은 일반적으로 좋은 품질인데 브리지 라인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라인을 말해.
아마도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중가상품(moderate goods)은 고가제품보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낮으며 많은 백화점과 작은 매장들에서 판매되고, 저가상품(budget goods) 또는 대중상품(popular goods)은 가장 낮은 가격대인데 아울렛과 월마트에서 만나볼 수 있어.

량생산, 대량유통되는 대중 유행 패션상품은 미국 패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품의 스타일은 전 세계의 백화점, 브랜드 매장과 상설 매장에서 판매되며 비슷한 스타일들은 다른 경쟁 브랜드들에게 모방된다.
디자이너 패션이든, 대량 생산되는 패션이든, 이제는 모두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구분짓기가 쉽지 않아.
심지어는 한 개의 생산업체에서 4~5가지의 각기 다른 라인의 상표를 단 옷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거든.

국에서 '명품'이 갖는 의미는 뭘까?

가끔 한국내 유통업체들이 외국 중저가상표나 미국산상표들을 팔면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보면 좀 어이가 없지.
소비자들에게 '유럽상표=명품'이라는 공식을 심어준 상술의 승리라고나 할까.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는 패션 아이템들이 더 이상 옛날처럼 장인의 손길을 거쳐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희소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야.
다만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고, 소비자가 지불하는 돈은 거의 상표딱지를 사기 위한 것일 뿐일 수도 있어.
세계에서 최고로 명품에 환장하던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탈명품의 바람이 분다고 해.
훌륭한 디자인과 좋은 품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 요런 것들이  패션 아이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점이란 걸 수십년만에 기억해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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