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파자마 이야기


세시대에는 남녀가 침대에 오르기 전에 흔히 편안한 나이트캡을 머리에 맨 다음 옷을 다 벗었다.

발가벗고 잤던 거야.
그러나 추운 겨울밤에는 낮에 입던 셔츠를 그냥 입고 잤다.
르네상스시대 이전에는 낮에 입은 옷과 잠옷의 구별은 따로 없었어.
그러나 1600년 경에는 약혼한 남녀가 화려한 잠옷과 그에 어울리는 모자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엔 밤에 열기(?)를 받은 몸에서 김이 날 것에 대비하여 '김이 빠져나가게 나이트캡에 구멍을 내라'고 권한 문인도 있었다.

람들은 헐렁하고 편안한 잠옷을 침대 밖에서도 계속 입으려 했고 또 낮에도 그냥 입을 수 있었으면 했다.
앤 여왕(1665~1714) 시절에 여자들 사이에서는 나이트가운 차림 그대로 길거리를 나다니는 것이 유행해서 사람들이 걱정했다고 해.
그런데 여자살인범이 그런 잠옷 차림으로 나타나 살인을 저지르고부터 그 유행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1800년대 들어서도 남녀를 불문하고 어깨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런 차림을 하면 여자들은 사랑스럽게 보이지만 남자들은 아무래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밖에 없었지.
1870년대 식민지에 나갔던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Pajama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잠옷을 가지고 돌아왔다.
힌두어로 '다리'라는 뜻인 파자마는 헐렁한 바지로 허리부분에 끈이 달려 있었다.

옷이 등장함으로써 마침내 침실에서 남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실내복과 같은 파자마는 중앙난방이 되고 침실에 전기불과 라디오가 등장한 20세기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였지.
1920년대의 한 패션평론가는 이렇게 썼어.
"나이트가운은 일찍 잠자리에 들 때 입는 옷이고 파자마는 침실에 좀 늦게 들어갈 때 입는 옷이다."
그리고 영화 초기 시대에 사랑의 우상이었던 루돌프 발렌티노가 거실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나타나자, 결혼한 여자들은 너도나도 자기 남편에게 그런 파자마를 사서 입혔어.

192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상의를 입지 않고 길거리에 나다니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1929년의 무더운 여름 한때 그 도시의 남자들은 상의대신 파자마 웃도리를 걸치고 출근하는 것이 유행했어.
같은 해 시카고의 신사복 장사들은 여름에 양복을 입는 고행으로부터 남자들을 해방시키려고 도심지 한복판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시위행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파자마를 파티장으로 끌어낸 것은 여성들이었지.
침실에서 입는 편안한 옷이 고급 패션으로 변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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