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모자 이야기

믿
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모자는 그것을 쓴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준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문화에서 모자는 계급의 표시로 이용되었어.
그 이유는 아마도 모자는 정말 쉽게 눈에 띄고 그것을 쓴 사람의 키를 키워 주기 때문이겠지.
또 하나의 이유는 모자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해 주는 기관, 바로 인간의 두뇌와 아주 가깝게 있기 때문일거야.
대성당 안에서 거행이 되건, 아프리카의 벌판에서 거행되건 간에 상관없이 대관식은 군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획득했음을 기념하는 행사이고, 권력의 상징은 바로 그 화려한 '모자'인 것이지.
인사할 때, 또는 존경의 표시로서 모자를 벗어 보이는 것은 굴복의 표시로 옷을 벗는 원시시대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한계급론」같은 책에는 우아한 신사들이 번쩍거리는 커다란 실크햇을 쓰는 이유가 '나는 누구도 도와주기 싫고 쓸모있는 일을 할 수도 없다'는 선언을 모자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써있다.

신병리학자들과 가발상인들은 숱이 많은 머리털은 흔히 남성다움, 마초스러움의 표식으로 통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아주 다양한 남성용 모자가 머리털을 가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이론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독수리 깃털 모자, 영국 근위병의 곰가죽모자, 이탈리아 저격병의 둥근 깃털 모자,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수비대의 빨간 깃털장식 모자 등을 떠올려보면 왠지 머리털과 닮은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영국 근위병의 상징물 같은 특대사이즈 곰가죽모자가 사실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근위병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척단 근위대가 나폴레옹 근위대를 쳐부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빼앗아 쓰기 시작했다는군.
영어로 'a feather in one's cap'이라고 하면 '명예'란 말인데 이건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인디언 전사의 머리장식에 깃털을 추가하는 것은 적을 한 사람 죽였다는 표시라는 것을 백인들도 알게 되었거든.
헝가리에서도 적국인 터키인을 살해한 사람만이 모자를 깃털로 장식할 수 있는 명예를 얻었다고 한다.

좀 덜 살벌하게는 스포츠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어.
영국에선 크리켓 경기에서 3타석 연속으로 타자를 아웃시킨 투수에게는 클럽에서 돈을 모아 새 모자를 사줬다고 한다.
이것이 발전해 하키나 축구에서 3골을 기록한 것을 '해트트릭(hat trick)'이라고 부르게 되었지.

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은 커다란 모자를 쓰는 게 보통이다.
앗시리아인들의 탑처럼 생긴 원추형의 모자, 미국에 처음 건너온 청교도들의 챙이 넓은 검은 모자, 로마교황의 삼중관,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널찍한 갓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을거야.
여자들은 계급을 밝힐 기회가 더 적었기 때문에 머리에 쓰는 물건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졌다.
율법시대에 유태여성의 머리장식은 남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지시받았는데 그 머리장식의 일차적인 목적은 정숙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직 남자를 차지하지 못한 처녀에게는 어느 정도는 자기 선전이 허용되었어.
그러나 기혼여성은 집 밖에서는 꼭 남편이 골라준 머리덮개를 쓰도록 되어있었지.

Female Football Player

후로 아주 오랫동안 정숙함보다는 유행을 따르는 패션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모자가 사용되어 왔어.
유행은 때론 패션계에서 모자를 완전히 몰아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반드시 모자를 쓸 것을 고집하는 그들만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광부, 미식축구선수, 양봉업자, 심해잠수부 그리고 중국집 배달부처럼 특히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모자가 반드시 필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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